
오세일

갚아야 할 빚이 너무 많다
<갚아야 할 빚이 너무 많다>의 세계 속 십 대는 항상 불완전하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삶의 중심부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지탱한 채, 그 근원의 의미를 찾기 위해 오늘도 방황한다. 하지만 정작 그들의 세계를 바라보는 카메라는 언제나 한결같이 고정되어 있다. 마치 개입 대신 관망을 선택한 작가의 시선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듯이, 항상 그들의 방황과 한 발짝 거리를 유지하고, 또 지켜본다. 이는 다르덴 형제의 영화 속 카메라의 전복과도 같아 보인다. 다르덴 형제의 카메라는 늘 피사체의 곁을 집요하게 따라다닌다. 그들의 행보 하나하나에 걱정과 불안을 머금으며, 그렇게 다르덴의 카메라는 관객의 흔들리는 동공을 표상한다. 그에 반해 <갚아야 할 빚이 너무 많다>의 카메라는 그저 관망한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각자의 판단에 유보하며, 그들의 방황에 대한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사실 어쩌면 영화는 처음부터 리코 가족의 행운을 앗아갔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생일 축하를 위해 케이크와 함께 선물한 즉석 복권. 하지만 영화는 즉석 복권의 당첨 여부를 보여주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단절된 결과에 대한 정보는,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에게 당첨되지 않았을 거란 부정적인 확신을 심어준다. 그들의 일상은 '꽝'이 나온 즉석 복권을 닮았을지도 모른다. 매일 막연한 기적을 바라보지만, 결코 일어나지 않을 기적에 대한 인생. 하지만 영화는 조심스럽게 즉석 복권에 당첨되지 않은 인생에 대한 행복을 시사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사랑하는 애인, 그리고 곧 태어날, 곧 사랑하게 될(혹은 이미 사랑하고 있는) 아기에 대해. 즉석 복권 당첨 따위로는 얻을 수 없는 행복에 대해. 소품 같은 영화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차기작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