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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챠정리몬함

왓챠정리몬함

8 years ago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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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북

책 ・ 1999

평균 3.8

귄터 그라스는 『양철북』에서 객관화된 역사적 사실과 얽혀 있는 이야기를, 자연주의(객관화된 사건)의 영역에서 해방시켜 특수화된 사건의 영역으로 끌어오는데, 이는 동화적 알레고리를 통해 가능하게 된다. 동화적 알레고리는 귄터 그라스 소설의 핵심이다. 먼저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를 다루는 방식부터 기존의 자연주의 문학과 차이가 크다. 일례로, 나치 장교가 연설하는 연단 밑에 주인공 오스카가 숨어서 북을 치는 장면이 나온다. 군악대가 웅장한 음악을 트는 가운데, 오스카가 북으로 장난을 치자 음악이 바뀌어 연설장은 금세 왈츠 무도회장으로 변한다. 그리고 오스카가 연주하는 방식에 따라 군악대들은 조종을 당해 마을을 헤집어놓고 다닌다. 얼핏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 것 같지만, 이는 나치 이데올로기의 허구를 정확히 집어낸 장면으로 꼽힌다.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목적이 “인간의 무용지물화”에 있다고 말하며, 심지어 사상에 대한 “자유로운 동의”조차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한다. 군악대 장면은 이를 함축하고 있다. 귄터 그라스는 사회적 상황마저도 일반적인 시대기술이 아닌, 하나의 함축적인 상징을 가진 이야기를 통해 서술한다. 일반적인 역사적 배경으로 독자가 그저 고개를 끄덕이게 하지 않고, 특별한 이야기를 형성함으로써 그것이 어떤 시대적-이데올로기적 함축성을 갖는지 추측해보게 하는 것이다. 그라스의 ‘이야기’는 일반적 역사 기술보다 그 시대상이 어떠했는지 독자를 자발적으로 추측시켜, 정서적으로 더욱 와 닿게 한다. 대표적으로 오스카를 살펴보자. 오스카는 범상치 않은 인물이다. 그는 네 살 때 계단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성장을 멈춘다. 반면 오스카의 사유능력은 태어난 순간부터 어른의 그것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뛰어나다. 오스카는 “어른들의 위선적 세계에 편입되지 않기 위해” 성장을 멈추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오스카는 훌륭한 관찰자의 입장에 서게 된다. 대상을 관찰하고 평가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겉모습으로 어른들을 속여 어른의 세계에 포섭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완전히 제3자의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우리는 여기서 오스카가 처해있는 상황과 그의 서술방식을 연결 지을 필요가 있다. 그는 비록 일반적인 어른처럼 사유를 하지만, 그것은 사유기능적인 측면에서만 그럴 뿐, 일반적인 어른과는 사유의 내용이 다르다. 일단 오스카는 어른의 위선적인 세계에 포섭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신체는 어린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기형적” 인물이 일반적인 범인들과 그 사유내용이 같을 거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다시 말해, 오스카가 처한 특수한 상황에 의하여, 오스카에게 일어나는 사건은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사건과 같을 수가 없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오스카는 객관화된 역사적 사건을 가장 주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화자가 된다. 또한 오스카는 ‘비명’과 ‘양철북’으로 이미지화된다. 오스카는 비명을 통해 유리를 마음대로 깨거나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조각한다. 오스카의 괴성과 깨진 유리는 ‘분노’를 상징한다. 유리는 맑고 투명하지만, 깨지는 순간 날카로운 무기로 변한다. ‘어른들의 도구적 관계’에 물들지 않는 ‘제3자’가 토해내는 괴성은 결국 순수성의 분노이며, 그러한 도구성에 얽매이지 않는 분노(혁명적 분노)야 말로 도구적 삶에 뿌리박고 있는 기성세대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다. 오스카가 매일 들고 다니는 ‘양철북’은 어머니의 심박소리를 대체한 도구라 할 수 있다. 오스카가 가장 위안을 얻는 장소는 바로 ‘자궁’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오스카는 나치패망 이후, 더 이상 관찰자의 입장에서 있지 않고 사회에 ‘참여’하기 위해 ‘성장’하기 전까지 양철북과 일심동체로 다니는 것이다. 이처럼 환상적이고 동화적인 알레고리는 단순히 특정한 상징뿐만 아니라, 인물의 세세한 개성을 형성하는 영역까지 정교하게 뻗어 있다. 흔히 귄터 그라스는 마술적 리얼리즘 작가의 문학격적 선배로 알려졌다. 마술적 리얼리즘은 자연과학적 인식세계에서 벗어나 신화적 인식까지 총체적으로 상정한다. 이러한 마술적 세계관은 의미들의 연관관계가 자연과학적 세계관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연결 지어진다. 오스카가 네 살 때 자의적으로 성장을 멈춘다거나, 유리를 마음대로 조종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자연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독자들마저도 이러한 이야기들을 자연과학으로 풀이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물리세계의 인과법칙에 포용이 안 된다고 해서, 그것이 뜬금없이 벌어지는 게 아니다. 순수한 분노의 상징으로써 유리조종, 어른들 세계에 편입되지 않는다는 의미로서 성장 중단 등등, 이것들은 전부 의미연관에 따라 개연적으로 연결된다. 귄터 그라스는 알레고리, 형식 실험 등을 과감하게 사회현실적인 문제와 접목시켜, 사회현실적인 문제를 닫힌 어떤 이념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널리 열려 있는 세계에 던져 놓는다. 참여문학을 자연주의적이고 사실주의적인 틀 내에서 해방시킨 것이다. 귄터 그라스의 참여문학적 예술관은, 사회현실적인 문제와 문학적인 인식 해방의 요소 전부를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표현주의적 참여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