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세일

모래그릇
마치 <복수는 나의 것>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기록하는 이미지와 함께 건조한 자막으로 그에 대한 정보를 나열하는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초반부는 고전 일본 수사물의 전형을 보는 듯했다. 해가 내리쬐는 여름의 날씨와 푹푹 찌는 더위가 스크린 너머에까지 전달되는 듯한 열기, 그리고 항상 땀을 닦기 위한 수건을 들고 다니는 형사들의 모습까지. 구로사와 아키라의 <들개>나 <천국과 지옥>과 같은 양상을 내심 기대하게 만드는 초반부. 그러나 <모래 그릇>의 모든 이미지들은 컬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인지, 흑백의 구로사와 아키라 작품들보다 더욱 현대적인 감각이 짚인다. 일본과 미국을 넘나드는 연주자, 재즈 음악 등 서양의 문물이 줄곧 눈에 띄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기대했던 진득한 누아르의 질감보다는, 환풍이 잘 되는 어느 여름의 나날을 편안하게 지켜본다는 나른한 감상이 그 바람을 앞섰다. 사실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바로 70년대 이전의 것들과 70년대 이후의 것들이 합쳐지는 순간들이었다. 예를 들면 류 치슈와 사부리 신의 출연. 그러나 항상 늙어 보이는 분장을 하고 나와야만 했던 오즈 야스지로 작품들에서의 그들이 아닌, 이제는 진짜로 늙어버린 그들의 육신. 분장 없이도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류 치슈와, 목소리가 변질되어 쇳소리가 나는 사부리 신의 음성. 새삼 세월의 흐름을 체감하게 만드는 그들의 출연이었다. 현재로써는 이 영화나 오즈의 영화나 전부 다 고전으로 대접받는 시기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당대에서의 몇 십 년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었던 찰나들. 이처럼 영화의 외부에서는 재차 흥미로운 요소들을 발견해낼 수 있었지만, 정작 영화의 내부가 흥미롭지 못하다. 베일에 싸여 있던 미스터리가 점차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느껴져야 하는 쾌감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는 어느샌가 신파로 대체된다. 거대한 영화로서의 이야기의 흐름보다는 차라리 가벼운 추리 소설을 한 권 읽은 느낌이 드는데, 그러한 점에서 요코미조 세이시 작가의 글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아예 자주 그의 원작을 필두로 영화화하는 이치카와 콘의 영화였다면 납득이 갔을 터인데, 그렇지도 않은 영화의 이야기를 자꾸만 듣고 있자니 피로감만 몰려온다. 미스터리를 다루는 이야기가 매혹적으로 다가오지 않다니. 일단 기승전결이 뚜렷한 한 편의 영화로써는 실패한 스토리텔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