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권영민

권영민

2 months ago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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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선샤인

영화 ・ 2024

평균 3.5

2025년 12월 31일에 봄

세 사람의 이야기는 그렇게 마무리된다. 첫눈의 설렘에서 시작한 소년의 마음에 소복히 쌓였던 눈은 어느새 전부 녹아 없어져 온데간데 없고 계절은 흘러간다. 내 일상을 비춰준 햇빛을 탓하기엔 그 얼마나 순수한 마음, 아름다운 추억, 따뜻한 겨울이었는지. 두 사람의 이야기는 이제야 시작한다. 나는 소년의 올봄이 벚꽃으로 가득하길 믿는다. 어쩌면 영화가 소년소녀의 프롤로그였다는 듯 겨울을 지나 찾아온 봄, Boy Meets Girl. . . 같은 곳을 보고 있는 줄 알았지만 각자 다른 곳을 보고 있던 그들, 그래도 잠깐이지만 함께 웃던 그 순간만큼은 거짓없이 순수하고 행복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 남은 것은 그 '추억'들 뿐일까? 아름다운 추억, 잃고 헤어지며 조금씩 성장하는 것, ... 그런 것이 전부였다면 좀 헛헛했을 것 같다. 그러나 영화를 N차하며 세 사람의 감정선을 여러 각도로 느껴보려 하고 곱씹어보니 결말이 좀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 겨울 첫눈이 내리고 눈이 쌓여 소년이 아이스하키를 하지 않았다면, 혼자 애쓰며 묵묵히 스핀을 연습하던 소년이 선생님에게 발견되지 않았다면, 셋이 뿔뿔이 흩어지는 끝을 맞이했다 해도 만약 선생님의 제안이 없었다면, 이별을 받아들이며 추억을 고이 지켜둔 마음들이 아니었다면, 그 겨울날의 행복하고 시렸던 추억과 말간 진심이 없었다면 두 사람이 우연히 마주쳐 타쿠야가 말을 꺼내려는 일이 일어났을까? 말더듬이 소년과 말수 적고 무뚝뚝한 소녀, 서투른 두 사람이 만나기 위하여- 그 모든 순간들이 모이고 모여 마지막에 이르러 도달한 영화적 순간, 감독은 그마저도 관객의 몫을 남겨뒀다. 이 결말을 나는 그래서 사랑한다. . . 무슨 이유인 줄도 뚜렷하게 알 수 없는 채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들, 미숙하고 감정적이어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되돌아보게 되는 것들. 살다 보면 그런 경우가 많다. 논리나 이성으로만 판단하고 이해할 순 없는 순간들. 그래서 때론 억지로 붙잡기보단 그대로 흘려보내는 것이 더 필요할 때도 있다. . . 바다가 보이는 홋카이도 중소도시의 겨울을 배경으로 한 영화 전반의 풍경이 너무 아름답고 영화의 제목에 걸맞게 곳곳에서 빛을 이용한 미장센이 훌륭했다. 아름답지 않은 장면을 꼽기가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고 따뜻한 겨울 영화다. 감독은 다소 뻔하지만 쉽고 적당히 괜찮을 이야기를 거부하고 좀 더 인물들의 입체성을 살려 생명력을 불어넣길 선택한다. 그러다 보니 영화 속 세 사람의 감정이나 행동원리는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이 영화의 호불호를 극명하게 가르는 지점이긴 하나, 개인적으로는 덕분에 적당히 풋풋하고 귀여운 영화에 그쳤을지도 모를 이 영화가 몇 배는 더 좋아졌다. 피겨스케이팅을 배웠던 감독의 어린 시절 경험을 토대로 스케이팅을 하며 촬영을 하는 등 제작 파트에서 1인 다역으로 영화를 완성한 오쿠야마 히로시 감독의 노력이 곳곳에 묻어나 더 값진 영화다. 이미 데뷔작 <나는 예수님이 싫다>(2019)에서부터 반짝였던 96년생 젊은 영화감독의 주목할 만한 두번째 이야기를 보고 나니, 그가 앞으로 남길 족적이 꽤나 기대가 된다. 🎵 Clair de Lune(달빛) - 드뷔시 ぼくのお日さま(My Sunshine) - Humbert Humbert Going Out Of My Head - The Zombies 📽️ 2024년 칸 영화제 - 주목할 만한 시선 📽️ 2024년 부산 영화제 - 특별기획 프로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