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맹
2 years ago

토성의 고리
평균 4.1
제발트 소설은 비문학처럼 계속 읽는데 왠지 모를 우울감이 연무처럼 나를 급습해온다. 벤야민이 소설을 썼다면 이렇게 썼을 것 같다. 마침 토성의 영향 아래에 있으신 분들이기도 하고. 결국 내가 붙잡는 기억이나 책, 이야기, 영화들은 사실 내 자아를 온전히 투영하는 것이고, 그렇기에 제발트가 이야기하는 학술적 사실, 이야기, 혹은 여행과 에세이 그 자체도 제발트의 멜랑콜리와 우울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죽음과 발광, 공허와 폐허. 감정을 말로 하지 않아도 내가 붙잡는 것들만 말해도 전달할 수 있다. 선형적인 발전론적이 아닌 토성의 고리같은 역사관. 먼지와 폐허로 만들어진 고리를 끊임없이 순환하는 역사의 천사. 진보란 모든 노력이 궁극적으로 허망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인간이 빚어낸 시선의 위조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