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엠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평균 3.5
언젠가 일본인과 대화를 하다가 "절대복종"이란 단어를 쓴 적이 있다. 2차 대전 당시 일본인들은 군인과 천황에게 절대복종하지 않았냐는 뉘앙스였다. 일본인은 아주 기분 나빠했다. 그건 복종이 아니라 충성이라며. 복종이 아니라 충성이라고 단호하게 바로 잡는 모습을 보면서, 오호라, 이것이야말로 참된 복종이로구나, 했다. 나는 질 나쁜 일본인처럼 그게 그거 아니냐, 라고 말했고 그는 착한 한국인처럼 그건 다른 거지, 라고 조곤조곤 설명했다. 일본 콘텐츠를 보다 보면 섬뜩할 때가 있다. 이 영화처럼 군국주의를 연상케 하는 집단주의적 서사를 볼 때 특히 그렇다. 지시가 떨어지기만 하면 조금의 회의감도 없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너구리들, 복지부동하는 국민과 선동하는 지도자들. 선동은 "고취시키다"라는 뜻이므로 무조건 나쁜 뜻은 아닌데, 세계 어디서든 '선동'이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된다는 걸 감안한다면, 일본의 집단주의는 섬뜩할 수밖에 없다. 삶의 터를 파괴하는 자에 대한 저항은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그 저항의 과정이 이렇게나 일사분란해서야, 그리고 이렇게 즐거웠다가 비장했다가 하는 식으로만 묘사돼서야... 대동아경영권도 서구의 공격에 대한 저항+황국 신민의 일사분란함과 우수함(즐거움)+비장미 등이었단 걸 생각하면, 많은 곳에서 지적하듯 일본인을 규정하는 첫 번째 정체성은 역시 집단주의다 싶다(그러므로 일본의 개인주의는 개인주의가 아니라 '부품주의'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볼트와 너트와 합판…등의 부품은 모여서 전체를 이루지만, 서로 붙어있으면서도 대화를 하지는 않는 것처럼). 이런 영화를 보며 일본인들이 가꿔온 일본 사회를 생각하면, 오랫동안 일본을 집어삼킨 미친 군국주의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느낌이다. 한반도라면 오랫동안 나라를 집어삼킨 미친 명분주의가 언제든 다시 일어나 사회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가족끼리 죽고 죽이는 아수라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처럼. 서사가 집중되어 굳건히 나아가지 못하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방방 뛰는 게 내 취향은 아니었다. 이런 식의 작가주의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지 않나.. 싶었지만 그래도 뭐 타카하타 정도 되면 그래도 되지. 실망하는 거야 뭐.. 연출자가 아니라 관객인 내 몫이니까.. 그래도 재미는 있어서 궁금했던 걸 찾아봤다. - 일본 전역에는 변신술을 사용하는 여우 괴담이 많은데, 유독 시코쿠만 너구리 괴담이 많다고 한다. 영화에서 너구리 변신술 최고 실력꾼들이 시코쿠에 있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 너구리들의 고환을 자세히 묘사한 건, 일본 설화에 따르면 너구리들은 고환으로 요술을 부리기 때문이란다. 한국으로 치면 호랑이와 담배, 산신령과 지팡이, 도깨비와 씨름의 관계 정도일까?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젠더적으로나 비판할 만한 건 사실 더 많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헤집을 필요가 있나 싶다. 집단주의니 뭐니 했지만, 난 타카하타와 지브리를 좋아하고, 일본과 일본 문화 중 몇몇을 꽤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