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이 발굴되었다.
Anticipation, story, memory.
같은 소리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버스 소리, 누군가에게는 총 소리. 누군가에게는 폭죽 소리, 누군가에게는 폭탄 소리. 기억의 차이.
저는 콜롬비아에 살다 왔습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콜롬비아에서 살다 온 경험이 있습니다. 이제 제게는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곳이죠. 그곳을 비추면서 "기억"을 말하는 이 영화를 보고 있자니 저만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인가 싶은 생각까지 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까지나 개인적으로 와닿을 수 있었던 것도 결국 기억 덕분이니 뭔가 적절하네요. 나한테만 들리는 나만의 소리.
영화가 비춘 콜롬비아 도시의 풍경은 익숙하고도 낯설었습니다. '그래 저랬었지!'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그런 확신에 대한 의구심이 생겼달까요. 오히려 이 영화에 의해 새로 생긴 기억이 기존 기억들과 분리될 수 없게 뒤섞이게 된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저 기억의 차이일 뿐인데 다른 사람들과 결이 다른 감상평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졌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습니다. 다른 영화 등에 관련해서도 그렇기야 하겠지만, 이렇게나 직접적이고 선명하게 체감된 것은 처음이어서일까요. 영화 내에서도 사람에 따라 소리가 다르게 해석되었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요.
영화의 제목은 입니다. <기억>이나 로 번역되는 것도 뭔가 옳지 않을 것 같다 생각됩니다. 아피찻퐁 감독님이 콜롬비아에서의 경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든 영화인 만큼 이에 상응하는 스페인어 제목을 붙인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와 같이 선보여지는 주관성은 제목뿐 아니라 영화의 내용에서도 계속해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영화/감독의 표현 및 주관성이 저의 실제 기억과 겹치면서 더욱 큰 공감과 신비로움이 발생했습니다. 마치 일종의 공명 현상의 중심에 서있는 듯한 기분. 워낙 새로운 느낌이었어서 평생 기억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직은 생생한 지금의 기억을 이렇게 코멘트에라도 박제해보고자 했습니다. (어쨌든 이 기억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머리 속에서 변형되고 닳아가겠지만요.)
기억과 영화를 같은 선상에 놓고 본다면 이 영화를 감상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기억을 경험하는 것과 비슷하다 할 수 있을텐데요, 실제로 <메모리아>를 다 볼 때 즈음에는 그저 영화가 아닌, 스크린의 한계를 초월한 개인적이면서도 낯선 기억이 제게 닿은 듯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영화를 통해 이제는 제 기억이 되었습니다.
설명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집착, 기억의 선천적인 불온전함, 영화를 비롯한 이야기와 기억의 유사성. 영화가 던지는 화두를 포함해 모든 면에서 <메모리아>는 저를 완전히 압도했습니다. <그래비티> 이후로 최고의 극장 경험을 한 것 같아요. 나의 기억도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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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메모리아>를 보니 감상이 더 깊어진 느낌입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를 시각적/음향적으로 표현해낸 것은 분명한데, 이에 대한 감상을 말로 형용하자니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먼저 드네요. 한편으로는 기억이라는 것이 애초에 완전하지도 않고, 완전하게 표현될 수도 없기에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여태 이어져온 그런 기억들의 흐름을 우리는 삶이라 부르는 게 아닐까 싶고요.
<메모리아>는 그 흐름 속 하나의 기억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기억의 근원에 도달합니다. 하지만 이야기적인 측면을 넘어서도 영화는 제목값을 합니다. 장면장면마다 인물들이 무엇을 기억하고 있을지 어렴풋이 짐작이 되게 연출했을 뿐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관객 역시 기억하는 것을 멈추지 않도록 유도합니다.
'기억' 그 자체를 형상화한 듯한 영화입니다. 새로 생긴 기억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기되고 변형되는 것과 같이 영화에서도 반복과 변주가 이어집니다. 병상 침대에서 병을 앓던 가족이 후반부에서는 침대에서 기억을 앓는 주인공이 되는가 하면, 믹싱 스튜디오에서 듣는 오케스트라 합주는 이후 날것의 밴드 합주와 대비가 됩니다. 바이러스에 대한 시는 주인공이 벤치에서 읊는 다른 시가 되고, 사운드 엔지니어 에르난은 전혀 다른 (하지만 어째서인지 성까지 같은) 에르난으로 대체됩니다.
놀랍게도, 주인공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기억일 것으로 추정되는 것은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남편의 부재는 언급이 되지만, 주인공이 이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란 추측 외에는 크게 존재감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다른 사람의 기억과 시선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온전한지와는 별개로 간접적으로 저희의 기억의 일부가 되기는 하지만요.)
어째서인지 잊혀지지 않고 집착을 부르는 '그 소리' 역시 이러한 주인공의 기억과 연관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녀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그녀에게만 들리는 소리 혹은 기억이니까요. 주인공이 영화 내내 은연중에 죽음과 지나간 것들에 관심을 갖는 것과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게 됩니다. 불면증에 대해 약을 구해보기도, 신의 말씀을 권유받기도 하지만, 정작 주인공에게는 죽는 것이 어떻냐는 질문에 대해 "괜찮다"와 "그저 잠시 멈추는 것"이라는 에르난의 답변만이 위로가 되어준 듯했습니다. 그제서야 주인공이 다른 사람의 기억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는 것으로부터도 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후반부에서 감독이 제시한 기억이 기어코 관객을 전염시킬 때에는 황홀함을 느꼈습니다. 우리의 것이 아닌 기억들을 맞이하며 정신에 폭풍이 찾아오는 셈이지만, 그 빗소리는 오히려 새롭고, 상쾌하며, 미래를 희망차게 바라보게 해주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단 하나의 기억이구나.
우리가 발굴해낼 기억은 아직도 많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