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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일

오세일

1 year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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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크족의 북소리

영화 ・ 1939

평균 3.4

뉴욕에 살던 부르주아 집안의 딸은 사랑하는 남자와 여생을 함께 하기 위해 도시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삶의 모든 것들을 처음부터 다시 계획해 나가야만 하는 이른바 개척의 시대에 몸을 던진다. 그렇게 인디언을 섣불리 살인자로 취급하고 현대의 문화가 소실된 미개척지의 황량함에 적응을 하지 못하던 한 소녀는, 개인의 세계를 가꾸어 나가는 과정을 거치며 비로소 믿음직한 여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인류가 존재하지 않던 땅에 문명이 들어서고 공동체가 설립되며 사랑이 피어나는 모든 순간들, 이것(들)이 바로 서부극이라는 장르만이 지닐 수 있는 낭만의 미덕이 아닐까. 유독 '땅'과 '짓다'라는 문장들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장르. 숭고한 개척의 찰나들. 사실 내러티브가 다소 편의적인 움직임을 보이기는 한다. 전사는 베일에 쌓인 채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이미 자신의 모든 삶을 길버트에게 바칠 준비를 마친 라나의 순종적인 태도, 굳이 라나의 부잣집을 떠나 개척의 시대를 바라보야만 했던 길버트의 사정 등이 부재한다. 하지만 존 포드의 영화가 언제나 그랬듯이, <모호크족의 북소리>에서 또한 서사를 넘어서는 숏의 정서적 아름다움이 그러한 단점들을 잊게 만든다. 이를테면 길버트와 라나 사이에서의 아들에 태어남과 동시에 카메라에 잡히는 아기 송아지의 모습, 마을 피로연에서 펼쳐지는 주민들과의 연대의 운동성 등. 그리고 오히려 길버트와 라나보다 더욱 궁금해지는 맥클레너의 존재감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남편의 죽음을 초연한 듯한 강인한 눈빛 뒤에 가려진 그녀의 인류애적인 순간들. 사실 <모호크족의 북소리>는 맥클레너를 위한 영화가 아닐까 싶어질 정도. 영화가 인디언을 다루는 방식은 투박하지만, 그렇다고 그다지 악의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재앙처럼 툭 하고 떨어지는 인디언들의 야만성이 강조되는 반면, 때로는 인디언이 미국인들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조력자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태도는 곧 영화의 평면성을 돌출시키는 그다지 좋지 않은 작법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디언이라는 종족을 악으로만 몰고 가는 편협한 시각을 지양하는 정신 자체는 올곧은 윤리의 결단이기도 하다. 인물들의 불친절한 전사와 작은 스케일은 끝내 대서사시의 감동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하지만, 소소한 서사의 내에서도 꽤나 아름다운 관계의 조응이나 역사의 감동을 선사한다. 역시 존 포드는 미국, 서부, 관계(사랑 혹은 가족)의 예술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