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濬澨

대결
평균 3.5
자크 리베트 특유의 자기중심적인 몽상들을 담뿍 담아, 신화적 스토리와 묘한 분위기의 주인공들이 '판타지' 라는 장르 영화의 상업적 언어들을 모조리 배제한 화면과 어우러진다. 조명, 음향, 연출로만 자아낸 초현실적인 장면들이 오히려 그 위로 현실감을 더해, '있을 법한 비현실'적인 요상한 어감의 분위기를 창조한다. 묘령의 주인공들이 주고받는, 어딘가 허전하고 부자연스러운 대화들이 그 초현실감을 배가하고, 그 뒤로 펼쳐지는 이상하게 텅 빈 도시와 황폐하고 조용한 북적여야만 하는 공간들, 공사중인 폐허의 이미지가 더해져 모호하고 몽롱하면서도 멜랑콜리한 분위기가 몹시 매력적이다. 분명히 '어딘가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을 것만 같은' 이상한 일들에 대한 이야기 같다. 영화는 불친절하다. 요상한 주인공들이 나와 겪는 미스테리한 사건들을 고운 화면들 위로 펼쳐내지만, 그 스토리는 몹시 모호하고 일말의 파악이라도 할 수 있는 신화적 설정에 관한 언급들은 무려 영화가 시작된지 한시간 반이 지나서야 나온다. 하지만 그 불친절함은 자크 리베트 특유의 수수께끼스러운 플롯의 특성들과 어우러져 전혀 불만스럽지가 않다. (가끔 그의 영화를 보다 보면 나는 그가 관객들에게 보여줄 맘 없이 만든 영화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든다. 작은 자물쇠 채워 둔 일기장에 갈겨 쓴 개인적인 몽상들을 훔쳐보는 것만 같다. 그리고 언제나 그것이 나에겐 몹시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리베트 특유의 퍼즐 같은 몽상의 조각을, 심오하겠다는 각오는 거두고 한 쪽 손으로 대충 턱을 괴며 감상하는 즐거움. 가끔은 생기발랄하고 가끔은 우울하고 가끔은 무심하지만, 그냥 그런 부분에서 오는 공통적인 사랑스러움이 있다. 굉장히 시크하고, 거부할 수 없이 매력적인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