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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가토 씨
평균 3.7
2023년 06월 23일에 봄
어쩌면 버스 자체의 다시점 숏인가 싶은 전후좌우의 각양한 풍경을 담는 카메라 트래킹을 따라, 길 위의 사람들을 지나치는 디졸브, 경쾌한 음악, 거기에 “아리가토~” 하는 대사가 덧입혀지는 구성이 반복된다. 계속되는 디졸브 탓인지 어쩐지 환상감마저 자아내는 리듬감인데, 로케이션 촬영이기까지 하니, 마치 내가 이 귀여운 버스의 승객이 된 것처럼 정겹도록 빠져들게 된다. 게다가 멈춰 설 때마다 주어지는 사람들의 부탁과 따스한 관계의 풍경까지 보고 있으면, 이건 거의 무한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아리가토 씨의 간선 버스 타이쿤인가 싶다. 그러고 보면, 전체적인 구성뿐만이 아니더라도 반복되는 순간들이 많다. 거칠게 버스를 앞지르곤 그만 퍼져버리는 고급 자동차를 몇 번이나 만나고, 도쿄로 가는 모녀가 지인과도 두 번 만난다. 처음엔 변명을 이리저리 내놓더니, 두 번째는 딸의 말마따나 도쿄의 친척을 만나러 간다고 해버리는데, 사정을 상세히 알지 못하는 관객으로서도 괜한 씁쓸함을 감지케 한다. 중간에 만난 의사는 “또” 임신을 했다는 부부네를 방문하고, 심지어 그렇게 태어난 아기조차 “쌍둥이”다. 또 어떨 땐 결혼식 가는 승객을 태우더니, 연이어 장례식 가는 승객도 태운다. 승객들 중 가장 빌런에 가까운, 사채회사 직원(일 거라는) 승객처럼 똑같이 수염을 기른 승객도 탄다. 반복이 주는 효과도 다양하다. 아리가토 씨가 도쿄로 더부살이를 가는 소녀를 흘깃흘깃 보다 절벽으로 떨어질 뻔할 때의 반복 편집, 그러니까 ‘아리가토 씨’와 ‘룸미러 속 울고 있는 모녀’를 숏과 역 숏처럼 비추면서 점차 템포가 짧아지는 몽타주는 사고 직전까진 어떤 위험의 묘사도 이루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을 자아낸다. 물론, 대부분의 장면은 유머적인 반복이다. 앞서 말한 순간들도 대체로 그렇고, 아리가토 씨가 자꾸만 버스를 세우고 행인들과 말을 나누자 “빨리 좀 가자”며 채근하는 사채회사 직원의 모습도 반복되며 웃음을 준다. 또한, 도쿄로 가는 소녀와 아리가토 씨가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자 떠돌이 여성이, 사고의 순간을 겨냥한 듯, “옆은 절벽이니 기사에게 말을 걸면 위험하다”며 훼방을 놓곤 막상 본인이 이야기를 늘어놓자, 옆에 있던 사채회사 직원이 “옆은 절벽이니 기사에게 말을 걸면 위험하다”며 마찬가지로 훼방을 둔다. 소녀의 어머니가 승객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자, 이에 대응하듯 떠돌이 여성이 승객들에게 술을 권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 다 사채회사 직원을 은근히 따돌리는 모습에서부터 웃음을 만드는가 하면, 술을 한 잔씩 받은 승객들이 “한 잔 더 걸치고”는 대뜸 노래를 부르자 “버스 안에서 술과 노래는 규정 위반 아니냐”며 사채회사 직원이 딴지를 건다. 이때 떠돌이 여성이 마지못해 그에게도 술을 권하는 척하다 그와 똑같이 “술은 규정 위반”이라며 거둬들이며 웃음짓게 한다(특히 앞서 여성의 말을 따라하던 남성의 모습과 대구를 이루는 듯이 이번엔 남성의 말을 여성이 따라한다). 반면, 마치 감춰진 듯한 어떤 반복이 묘한 서정성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를테면 떠돌이 여성은 아리가토 씨에게 자신이 처음 이 버스를 탔을 때도 “당신이 내게 담배를 권했다”며, 아리가토 씨의 반복적인 행위, 친절, 또 예나 지금이나 (타지에서 온 여성으로서, 정처없는 여성으로서) 느꼈을 따스한 정감을 드러낸다. 심지어 여성의 과거가 나오진 않지만, 얼마간 험난했을 거라는 짐작이 드는데, 마치 도쿄로 더부살이를 가는 소녀와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문득 추측케 되는 것이다. 실제로 아리가토 씨는 “방직공장, 제지공장 등 방방곡곡으로 팔려 가는 여성을 올가을에만 여덟 명을 태웠다”며 (이때도 ‘방방곡곡’이라는 표현을 반복하며 강조한다) “이럴 거면 장의차를 운전하는 게 낫겠다”며 씁쓸한 농담을 던진다. 말하자면, 계속해서 반복되는 서글프고 씁쓸한 어느 삶. 그러한 파토스의 방점은 아무래도 조선인 여성을 만났을 때일 것이다. 공사를 끝내고 다른 터널 공사 현장으로 떠나야 한다는 그녀의 삶 자체가 고난의 반복일진대, 영화는 아예 롱 숏으로 저 멀리, 지난하게 고갯길을 오르는, 그녀와 마찬가지의 삶을 사는 여성들을 비춰낸다. 이 순간만큼은 유난히 감상적인 음악까지 깔리며 극의 정서를 추키는데, 터널 안으로 들어가는 버스로 인해 저 멀리 캄캄한 배경 가운데 아뜩한 밝은 점이 되어가는 여성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사실 서울아트시네마 트레일러 생각도 조금 나면서) 더없는 감상이 휘몰아치고야 만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좋았던 장면은 따로 있다. 영화 말미, 다시 한번 아리가토 씨가 도쿄로 가는 소녀를 흘깃흘깃 쳐다보는데, 이번엔 룸미러가 아니라 고개를 돌려 직접 보기에 이른다. 그러자 이번엔 떠돌이 여성이 룸미러로 아리가토 씨를 보는 듯 시점 숏이 그려진다. 편의적으로 소녀와 여성으로 호칭을 구분하자면, ‘소녀’(아리가토 씨의 시점 숏)-‘아리가토 씨’(객관 숏)-‘소녀’(여성의 시점 숏이면서 아리가토 씨의 시점 숏)-‘여성’(객관 숏)-‘룸미러 속 아리가토 씨’(여성의 시점 숏)-‘여성’(객관 숏)-‘소녀’(여성의 시점 숏이면서 아리가토 씨의 시점 숏)-‘소녀를 보고 있는 룸미러 속 아리가토 씨’(여성의 시점 숏)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녀의 숏처럼 역 숏으로서의 위치나 인물의 시선 방향으로 인해 두 시점이 중첩되는 듯한, 시점 숏의 반복과 얽힘 자체도 굉장히 흥미로웠던데다 숏의 배열도 반복적인 역순인 가운데, 서로 엇갈리는 감성이 좋았다. 특히 “한눈팔다 아까처럼 사고 내지 말라”며 유머러스하게 주의 내지 핀잔을 주는 여성의 대사까지 이어지면, 흡사 영화 속 ‘반복’이 드러내던 정서가 한 데 녹아 있는 것만 같은 장면이었다. 더욱이 “고개를 한 번 넘어간 여자는 좀처럼 돌아오지 못한다”며 사업할 돈으로 소녀를 구해주라는 듯이 귀띔을 하는 여성의 씁쓸한 조언까지 뒤잇는다. 이토록 많은 반복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작 중요한 귀향, ‘다시 돌아온다’는 반복적 행위의 불가능성, 그리고 마치 자신과 같은 삶을 반복하게 하지 말라는 듯한 말처럼 들려 안타깝고도 따스한, 그야말로 아이로니컬한 감흥을 이끈다. 아리가토 씨의 좁디좁은 버스엔 희로애락이 가득하고, 저마다의 떠돎과 떠나감이 자리한다. 결국 상투적인 표현일지언정 어떤 삶의 흐름, 속도와도 같을 아리가토 씨의 버스일 테다. 수많은 타자들과 어우러지며 웃음 속에서도 시대적인 상흔을 그려내는 걸 잊지 않는 버스의 궤적인데, <벌집의 아이들>을 보면서도 그랬지만, 우리에겐 한없이 아프고 시리던 시대에도 피어나는 웃음이 괜히 질투 나고 서럽다가도, 정감있게 울려 퍼지는 “아리가토”와 함께 천천히 흘러가며 잃지 않는 희망이 별수 없이 흐뭇하고 푹하다. 무엇보다 다양한 반복으로 아이러니할 정도로 다채로운 정서의 운율을 형성해나가서인지, 묘하게 시적으로도 느껴지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