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임중경

임중경

5 years ago

4.0


content

늑대의 시간

영화 ・ 2003

평균 3.5

누군가의 희생으로 연명하는 인간 사회의 굴레에서. 미카엘 하네케는 장르 영화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높아 그것을 거부하는 듯 하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처럼 보이는 <늑대의 시간> 역시 다른 하네케의 영화들처럼 뚜렷한 서사를 따라가기 보다는 사건의 발생과 인물의 반응을 쫓아야 할 뿐인데, 이 영화는 그것을 누군가의 희생-남은 사람들의 생존으로 반복해서 보여준다. 아버지가 죽어 나머지 가족이 살고, 집을 태우자 아들을 찾고, 말을 죽이자 비가 내리고, 염소를 죽여 위험한 상황에서 숨는 등 인과관계가 뚜렷하지 않지만, 그것을 보는 관객들이 희생-생존이라는 규칙에 익숙해지게 만든다. 그리고 불 속에 뛰어들어 재난에서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미신을 극중 인물의 대사를 통해 전달한다. 결국 영화의 결말에서 어린 아이인 베니가 스스로를 희생하려는 장면을 통해 영화는 질문을 던지는 듯 하다. 영화를 보는 나 자신은 그 희생의 당위에 설득되지 않았는지. 결국 나를 희생의 방관자에 위치하게 한 후, 그 희생을 저지하고 어딘가로 떠나는 기차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그리고 당분간은 그 자리에서 떠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