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김로

김로

8 years ago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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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요

책 ・ 2012

평균 3.7

(스포일러) 주인공 크레이그가 어릴 적 동생과 하나의 담요를 나눠 사용하던 추억에서 우연히 만난 레이나와의 인연을 추억하는 지점까지의 전개를 담고 있다. 불우한 가정환경이나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던 암울한 시절에 크레이그는 고통을 잊기 위해 종교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했다. 그는 지옥이나 불안한 현재로부터 벗어나 천국으로 가 온전한 행복을 누리고 싶어 했다. 하지만 행복과 불행은 크레이그의 생각처럼 완전히 서로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만화는 가고 싶지 않은 캠프 도중에 레이나와 만난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삶의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려는 듯하다. 불안함 역시 약간의 행복이나 행운과 뒤섞여 나타나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불안한 상태로 제시되는 것이다. 세상에 온전한 것은 없다. 몇몇 종교인들의 편협한 생각은 크레이그로 하여금 종교를 향한 맹신에 의문을 달게 한다. 또한 레이나와의 만남이 아릅답지 만은 않다는 것을 그는 깨닫는다. 결국 결말부에서 종교인을 그만 둔 크레이그이지만 성경에 나오는 ‘혹은’이라는 단어에 대한 애착은 끝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는 때때로 불완전성이 오히려 고무적일 수 있다고 말하며 불완전성을 포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크레이그는 레이나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을 없애면서 그녀가 만들어준 담요만은 버리지 못한다. 레이나가 크레이그가 그려준 벽화위에 하얀 페인트를 칠하는 장면 끝에서도 온전히 지워지지 않은 약간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는 이별에서도 불완전성이 있을 수 있으며 그것을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전개 도중 크레이그는 모든 것이 끝난다면 무엇을 위해 관계를 시작하나 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 그러나 만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눈길 위를 걸으며 새하얀 표면에 한순간일지라도 흔적을 남기는 일의 보람을 주장하며 그때의 대답을 대신한다. 크레이그가 하얀 표면 위에 흔적을 남기는 일의 보람을 애기하는 만화의 결말부는, 그가 만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작중에는 직설적으로 다양한 무늬의 패턴을 지닌 담요가 이야기를 가진 만화에 비유하는 장면이 나온다. 마치 그가 다양한 곳에서 만화의 존재를 의식할 수 있고, 설령 만화의 페이지를 한 번 보고 안 보게 되더라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읽혔다. 자기고백처럼 보이는 이 만화를 읽다보면 크레이그가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려왔음이 빈번히 드러난다. 이 만화를 읽으면서도 그가 오랫동안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말해주는 과감한 표현들이 돋보였다. 이 만화는 거의 600 페이지에 달하지만 단숨에 읽을 수 있었는데, 이 원동력이 진솔한 이야기에 더불어 절묘한 컷배분과 현란한 표현력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겨울, 특히 연말에 읽기 좋은 만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