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신상훈남

신상훈남

2 years ago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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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의 피자가게

영화 ・ 2023

평균 2.1

2024년 05월 18일에 봄

<파묘>가 목둔으로 적을 무찌른다면 이 영화는 뇌둔으로 물리친다 영화의 모든 부분들이 '무리수'가 따로 없다. '이 장면 한번 넣어보는 거 어때?'로 시작하여 점점 커지는 스노우볼을 감당하지 못 하는 역량이 이 영화에 그대로 드러난다. 이토록 정교하지 못 한 영화의 완성도를 보고 누군가는 '감독님, 이런 요상한 영화는 처음 보는데요?' 라고 말했겠지만 '무섭게 만드려고 그런 건데...' 하고 억울해하는 감독. 말 그대로다. 그렇다면 무섭거나, 재밌거나, 원작 팬들을 향한 헌사 정도는 되어야 이 영화의 존재가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가는 토끼 잡으려다 잡은 토끼 놓치는 영화가 아니라, 애시당초 토끼는 한 마리도 존재하지 않는 그런 영양가 없는 작품이었다. “나 이모 싫어. 너무 못됐고 담배냄새도 나. 웃을 일이 아니야.” “알아, 그냥 간만에 의견이 일치되니까 기분이 좋아서.” '악몽'을 소재로 하는 영화는 대개 주인공이 그 악몽 속에서 헤매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곤 한다. 물론 그 악몽은 '왜 꾸는지도 모르겠는 미스터리한 일'로 그려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조금 달랐다. 마이크는 납치범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의도적으로' 어떠한 약을 먹고 같은 꿈을 꾸는 것이었고, 공포영화의 고질병 중 하나인 '알고 보니 꿈' 같은 식상한 전개 없이 소재 하나를 우직하게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하기 위해 도구처럼 이용하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바보 같은 실수를 많이 했어. 과거를 바로잡으려다 제일 소중한 너까지 잃을 뻔했지. 하지만 이젠 안 그래.” 이 영화의 원작은 게임인데, 게임은 사실 영화와 별반 차이가 없다. 플레이어는 관객이며 게임을 시작하면 순식간에 그 규칙을 따르며 몰입하게 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차이점이라면, 바로 '설득'의 영역이다. 게임은 플레이어를 설득하지 않는다. 정해진 대로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이기 때문이다. 반면 영화는 러닝타임 동안 지속적으로 관객을 설득시켜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게임다운 영화'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런 점들이 일절 없다. 영화의 장식품들 대부분이 게임유저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게임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구현해낼 수 있다.. “네가 할 일은 딱 하나였어. 놈에게 진실을 숨길 것. 낌새를 채면 죽일 것.” “그럼 두 개죠.” [이 영화의 명장면] 1. 프레디의 피자가게 이런 장르인 거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악인들을 무자비하게 퇴치할 때의 카타르시스는 '알고 봐도' 짜릿했다. 영화적으로는 너무 대충 대입시켜놓은 빌런 느낌이 있지만 외려 이런 구도는 '어떤 폭력을 가해도 그 안에서 정당화'되곤 하기에. 관객들은 얽히고 설킨 인물간의 관계보다 그냥 심플한 빌런이 '정의구현' 당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 정의구현을 집행하는 대상이 프레디라면 더더욱. 2. 꿈 마이크는 헷갈린다. 이 꿈속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는 말에. '꿈은 깨니까' 무의미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영원히'라는 표현 앞에 망설인다. 동생만 건네주게 된다면, 그 동안 겪은 죄책감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셈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전부 허상이었다. 이 또한 자신이 꾸고 있는 꿈과 다를 게 없었다. 잠시 잊고 있었다. 그가 꿈속을 헤맸던 가장 큰 이유는 , 사실 동생에 대한 죄책감도, 납치범의 얼굴을 알아내기 위해서도 아닌, 마지막으로 남은 애비만큼은 꼭 지켜내고 싶어서였다. 마이크와 애비의 유대감 역시 잘 구현된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장면만큼은 꽤 먹먹했다. 설득력 하나도 없는 영화 신경쓰지 않아도 알아서 몰입이 됐던 게임과는 달리 눈에 불을 켜고 집중해보려고 해도 그것이 힘들었던 영화 “있잖아. 앞일은 알 수 없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