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후현

광장 / 구운몽
평균 3.7
자유주의의 광장은 화려하게 빛나지만, 그 빛이 핏빛임을 깨달은 사람들은 각자의 밀실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숨어버렸다. 사회주의의 광장은 자체가 거대한 밀실이 되어버렸다. 사람이 모이기 위해 만들어진 광장에 정작 사람은 없고 체제만이 남았다. . 어떤 체제 위의 광장에서 사람들이 모이고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 애초에 체제 위에 인간은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 . 이명준은 또다른 광장이 아닌 사랑의 품을 택하였다. 이명준이 닿지 못한, 꿈 꿨던 중립국은 개인의 이데올로기를 떠나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곳일 것이다. 그렇다면 중립국은 존재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인류가 정의한 집단, 국가, 가치관 위에 중립국은 세워질 수 있을까. 해결책은 분명 서로를 사랑하는 것에 있는데 나는 그 실현 방법을 도저히 모르겠다. . 이명준의 사랑은 분명 깊은 고뇌를 거쳤으나 그것이 상대방에게 표현되는 방식은 때론 너무나 무책임하거나 심지어 폭력적이기까지 한다. 때론 그 고찰마저 성욕의 합리화로 보이기도 한다. . 머릿 속의 고찰이 아무리 복잡하고 심오하고 학문적일지언정, 온갖 문학 작품과 철학과 경험을 참조하였을지언정, 그 생각의 결과가 타인을 상처입히고 헐뜯는다면 그건 뜻도 무엇도 없는 자기 합리화이며 자위 행위에 불과하다. 그 대상이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 그래서인지 나는 항상 무섭다. 내 머릿속에 오만 잡생각이 혹여라도 타인을 상처 입힐까 두렵다. 그럴때마다 떠올리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내가 상대하는 이 사람도 나만큼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주체라는 것을. 아니 오히려 타인의 생각에 비하면 나의 부족한 머리에서 이루어지는 그것은 별 볼 일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