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HBJ

HBJ

7 years ago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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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열의 음악앨범

영화 ・ 2019

평균 2.9

'유열의 음악앨범'은 1994년 가수 유열의 첫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오며 처음 만난 두 남녀의 러브스토리를 다룬 영화다. 90년대부터 2000년대에 대한 향수가 가득 담긴 듯한 이 영화는 딱 그 시기에 나왔을 법한 정통 멜로의 느낌도 있다. 다양한 조연진들을 동반하여 웃음에 많이 의존하는 요즘 멜로들은 사실상 로맨틱 코미디에 가깝기 때문에, 이런 담백하고 깔끔한 멜로가 상당히 반가웠다. 이 영화에서 눈 여겨 볼 점은 공백이 많아 보인다는 것이다. 두 주인공이 주변 친구들한테 술에 취해가며 고민을 털어놓는 장면도 없고, 뭔가 특별한 데이트 장소로 가는 낭만적인 씬도 없다. 대사들은 사무적이거나 일상적이다. 하지만 두 주연은 그 공백은 아주 훌륭하게 채워간다. 정해인과 김고은은 굉장한 케미를 보이며, 어색함, 쑥쓰러움과 설렘이 공존하는 두근두근거리는 감정을 관객에게 충분히 전달한다. 오로지 눈빛과 몸짓과 프레임 안의 공기에서 이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다. '은교'를 안 본 나한테 김고은은 언제나 거품이 많이 낀 여배우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이후 행보가 많이 아쉬웠지만, 이번 영화에서 김고은의 연기는 정말 훌륭했다. 일부 대사들을 좀 잘 소화하지 못했지만, 이런 점들은 아주 사소하게 느낄 정도로 대만족이었던 연기였다. 정해인도 무거운 과거의 짐에 눌려있지만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려는 남자를 굉장히 잘 표현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둘의 호흡이 그냥 너무 마음에 들었다. 아무 말 없이 이 둘이 같이 있는 모습만 봐도 그 방 안의 공기가 느껴지는 연기가 바로 러브 스토리를 다루는 영화의 핵심이고, 두 주연은 그 정석을 보여줬다. 여기에서 정지우 감독과 이 두 배우들이 굉장히 좋은 팀워크를 선보이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는 롱샷부터 설레는 마음에 같이 흔들리는 핸드헬드 미디움 숏들, 그리고 서로 푹 빠진 두 남녀의 꿀 떨어지는 눈빛을 잡는 클로즈업까지, 정지우 감독은 배우들의 연기와 호흡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이를 어떻게 최대한 효과적으로 잡을지만 고민한다. 하지만 문제는 중후반부부터 시작한다. 사랑이 이제 막 피어나는 설레는 감정을 잘 포착하지만, 그 이후에 있을 위기-갈등-화해의 공식은 다소 아쉽다. 이야기 자체는 상당히 흥미롭지만, 인물들의 감정선은 좀 따라가기 힘들어졌다. 그리고 이 영화의 숏들도 짧은 편이 아니다. 초반부에는 인물들의 감정을 온전히 잡기 위해 테이크를 계속 잡는 연출이 장점으로 작용했지만, 그 감정이 잘 이해되지 않는 중후반부부터는 오히려 페이스를 루즈하게 만드는 단점으로 작용한 것 같다. 2시간이면 멜로치고는 아주 살짝 긴 러닝타임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러닝타임 더더욱 길게 느껴지게 만드는 주범이 된 셈이다. 이야기 구조는 두 주인공의 첫 만남부터 수년씩 플래시포워드를 한다. 하나하나 변해가는 도시의 풍경처럼 이들의 인생과 고민도 바뀌지만, 여전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유열의 목소리와 제자리에 있는 두 주인공의 집처럼 변치 않는 서로에 대한 사랑의 대비로,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들과 변하지 않는 것들의 구도를 만들며 두 주인공의 사랑을 강조하는 이야기는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각 플래시포워드마다 주인공들의 삶에서 너무 많은 것들이 변한다는 생각이 안 들어서 뚝뚝 끊기지도 않고 자연스레 이야기가 흘러갔다. 아파트가 들어서고, 정다운 골목이 현대화되고 관광객들이 들어오고, 유행하는 음악풍도 달라지고, 기술의 발전이 계속 이뤄지며 세상이 바뀌는 파도 속에서 고요하지만 굳건한 섬처럼 자신들만의 꿈을 살고 있는 두 주인공의 러브 스토리를 보면서는 미소 밖에 지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