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비켜라, 이 무능한 것들아." "어디 한 번 벌어볼까~?" 이쯤 되면 충무로에 개같은 대사 모음집이 족보처럼 떠돌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2021년을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2001년에 나올 법한 대사들을 보고 듣게 하는 건 죄악이다. 그렇다면 감히 관객에게 벌을 전가한 죄인은 누구일까. 시나리오 작가? 연출부? 제작자? 아마 그간 행적들을 돌이켜보건대 이런 반시대적인 대사를 집필한 건 99% 확률로 조성희 감독일 것이다. 주조연 엑스트라 할 것 없이 입 벌릴 줄 아는 놈들은 죄다 작위적인 대사를 내뱉는 바람에, 오그라든 손발을 자르고 싶지만서도, 누군가의 손발을 잘라내야 한다면 이걸 쓴 감독의 손발부터 잘라내는 것이 맞지 않을까? 타이거 박의 티타늄 도끼를 볼 때마다 고광렬의 날아간 손모가지도 생각나는 것이고, 조만간 날아갈지도 모를 누군가의 손모가지도 아른거리는 것이었다. 예고편만 봐도 등장인물들의 유형과 이들에게 벌어지는 사건, 그 역경을 극복해내는 과정과 아름다운 결말까지 머릿속에 그려지는 영화가 있다. 경부선 행신역부터 시작해 부산역까지 11개 역을 지나는 동안 단 한 번도 레일 위를 벗어나지 않는 그런 영화. 그래도 한 번 쯤은 열차 지연도 할 법한데 우직하게 정해진 시간과 순서를 딱딱 지켜내고 마는 그런 KTX같은 영화.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예고편은 본 사람들에게 한 가지만 묻겠다. 주인공 일당이 발견한 인간형 로봇 '도로시'는 어떻게 될까? 만약 이 질문을 듣고 당신이 머릿속에서 떠올린 줄거리가 있다면 그것은 매우 높은 확률로 이 영화 내용과 일치할 것이다. 과연 주인공 일당은 돈에 눈이 멀어 악행을 일삼는 나쁜 녀석들(Bastards)일까, 아니면 남몰래 따뜻한 인류애를 품고 세상을 구하고 싶어 하는 히어로들일까. 당신은 경부선의 종착역이 어딘지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클리셰들도 잘만 배치한다면 수작이 된다. 하지만 <승리호>는 줄거리가 뻔하게 흘러가는 건 둘째치고 영화에 개연성이 없다. 빠른 전개를 위해 '설명충' 방식을 사용, 주인공 크루의 배경을 요약 전달한 것은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왜 이 인물이 돌연 이런 선택을 내렸는지는 나머지 씬들을 통해 관객을 설득시킬 의무가 있다(곳곳에 숨은 장치들을 내가 단순한 오락 영화로 착각해 놓친 것이라면 정중히 사과하겠다). 승리호 선원들뿐만 아니라 빌런, 그리고 엑스트라들까지 대부분 캐릭터들의 행동에 당위성을 찾기 어려운 것은 줄거리나 연출, 적어도 둘 중 하나는 실패했음을 말해준다. 나는 둘 다 실패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개그씬이다. 관객 수준을 <방귀대장 뿡뿡이>나 보는 미취학아동인 줄 아는 건지 아니면 단지 감독이 방귀 페티쉬가 있는 건지 시종일관 방귀로 웃기려고 하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초등학교 저학년들에게 '똥'을 얘기하면 자지러지는 것처럼 이 감독에겐 방귀 소리가 웃음벨일 거라 생각하니 방귀가 앞을 가린다, 아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더러우니까 방귀 얘기는 그만하더라도, 분명 이 장면은 웃기려고 집어넣은 것 같은데 어이가 없을 정도로 안 웃겨서 되려 그 점에 콧방귀가 나오는 장면들이 있다. 설마 콧방귀마저 노린 거라면 나는 남은 여생 동안 이 감독을 유일신으로 섬기며 살겠다. 한국형 SF? K-가오갤? 장르적 시도만으로 박수를 받는 것은 <디워(2007)>까지 였으며, 애국심만으로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명량(2014)>까지였다. 근데 지금이 몇 년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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