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1부 🤔 2부 😍 로베르트 볼라뇨가 쓴 시나리오를 크리스 마르케가 연출한 <킬 빌>을 보는 듯 했다. 네 명의 여자 스파이가 교수를 납치하는 중심 서사는 페이크인듯 했고, 각자 인물들의 과거를 이야기해주는 이야기의 이야기들이 중심 이야기인듯 반짝거렸는데, 첫번째 스파이는 첩보물과 히치콕(특히 <오명>)에 대한 비틀린 우화로 읽혔고, 두번째 스파이는 어렸을 때 에반게리온이나 최종병기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기분이었으며, 세번째 (커여운) 스파이는 <화양연화>보다 좋았다. 네번째 스파이는 소련 사람일지라도 이보다 더 애뜻하게 소련을 (더 나아가서는 냉전 시대를) 추억할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지 않은 예산으로 살인 장면을 표현해 내는 감독의 연출력이 눈부시게 빛난다. 냉전과 첩보물, 모더니티, 이야기의 뼈대가 아직은 남아있는 2부를 지나 모든 것을 해체하는 약 빤듯한 3부가 이어진다. 3부 🤩 작가의 죽음. 보르헤스는 <바벨의 도서관>에서 이야기를 홀로 완전하게 창조해내는 천재적 작가의 존재를 의심하며, 이야기들의 이야기들을 따라가다보면 끊임없이 상호복제하며 증식하는 이야기들의 뫼비우스의 띠에 갖혀 영원히 길을 헤메게 될 것이라고 했다. 3부는 2부에 대한 메타 서사로써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무에서 기괴한 현상이 일어나서 인물들을 위기에 빠뜨린다는 B급 매지컬 호러 이야기는 네 명의 여배우를 캐스팅해서 퀘벡을 배경으로 찍으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동시에 이야기의 경계 너머를 침입해서 이 영화를 만드는 감독과 스텝들을 미치게 만드는 실재이기도 하다. 감독은 더 이상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가야 갈지 길을 잃고는 인터넷에서 중고 서적들을 찾아 본다. 이 영화는 영향을 준 이야기들, 50-60년대 미국의 B급영화들과 쥘 베른, 고골 등 기괴한 소설들을 나열하며 길을 찾아나가다가 카사노바의 자서전에 도달한다. 카사노바의 자서전 부분은 영상이 MBC 써프라이즈가 생각날만큼 연극적이고 작위적으로 연출되는데, 온갖 화려한 치장을 덧씌우는 바로크적 퇴폐미와 어울러져 어떤 양식성의 극단을 형상화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네 명의 여배우가 남미의 드넓은 자연 위에서 나무처럼 서 있는 영상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마치 네 명의 여인들이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연출되며, 젖가슴을 까보여주면서 원시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카사노바의 영상에서 끝까지 카사노바와 섹스를 하지 않던 어떤 문명성과 대조된다. 그 둘 사이에서 거미(=독자적인 생명력을 지닌 이야기의 은유이자 1부에서 도식화한 이 영화의 형상)가 줄타기를 하는 와중에 작가는 길을 잃고 사라진다. 네 명의 여배우는 2부에서 그랬듯이 이야기의 여신들이자 마녀들인데 카사노바의 영상은 이들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데아라고 얘기한다. 닿을 수 없는 그녀들을 욕망하다 보면 결국 창작자는 머리가 돌아버린다. 정신병원에 갖힌 영화감독은 다소 그로테스크한 카사노바는 되었으나, 이야기의 여신들이 아니라 기괴한 비너스 (이데아로써 이야기의 시뮬라크르)와 사랑을 나눌 수만 있을 뿐이다. 작가의 죽음으로써 이야기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나레이터마저 완전히 사라진 빈 자리에서 다시 영사기가 돌아간다. 4부 🤯 작가의 죽음 이후의 이야기. 색채도 없고 소리도 없고 나레이터도 없으며 논리성도 없다. 사람들이 갑자기 비행기가 되고 비행기가 두 개였다가 그 다음에 세 개로 날라다니는 숏이 연달아 붙는다. 지상이 이야기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논리성이라는 제약에서 해방되어 하늘을 날라다닌다. 지상에서는 괴물이 등장하고 결국에는 하늘과 땅이 뒤짚힌다. 시네필적인 영화사에 대한 인용을 거쳐 이야기의 철골을 해체하고 남겨진 외로운 영토에 새로운 작가가 의자 위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물고 있다. La F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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