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김재범

김재범

4 years ago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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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투구

영화 ・ 1952

평균 3.6

2022년 07월 12일에 봄

자크 베케르, 표피로의 침입 - 베케르의 영화에는 유독 뺨을 때리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현금에 손대지 마라>에서 주인공 막스와 리온이 잔느 모로의 뺨을 돌아가며 거세게 때리는 장면도 강렬했고 <황금 투구>에서 악역 르카가 자기 부하의 뺨을 불시에 때리는 장면도 그에 준했다. 뺨에 침입하는 손의 반복. 돌이켜 보면 위 두 영화에서는 이상하게도 '타자의 침입'을 표상하는 이미지들이 산재하여있다. <현금에 손대지 마라>의 오프닝은 아예 고액의 금괴 12개가 누군가로부터 도난당한 신문 기사로부터 시작한다. 타자의 침입에 무력할 수밖에 없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듯한 영화. 베케르의 영화를 '침입의 영화'라고 단언하는 것은 무리일까. -시선의 침입 <현금에 손대지 마라>의 초반부 무도회장 씬은 막스 오퓔스를 연상케 하는 화려한 카메라 워크와 신나는 춤과 음악으로 가득해 보이지만 그 심층에는 은밀한 시선의 침입이 잠재되어 있다. 앳된 잔느 모로와 친구 로라가 화려한 무대 위에서 타이트한 의상으로 뇌쇄적인 춤을 추고 있을 때 그 무대 아래에서는 밀집된 남성 관객들이 음흉한 시선으로 그녀들을 쳐다보며 첫 번째 시선의 침입을 범한다. 이는 이후 피에로가 계단을 올라오는 막스를 벽의 자그마한 창문을 통해 관음하는 장면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애초에 무대가 가지고 있는 시선의 자유적 공간성은 차치하더라도 피에로의 방벽은 시선의 침입이 필연적으로 차단되는 공간이지만 인물은 간이 창문이라는 공간을 활용하여 그 차단을 간단히 무마시켜버린다. <싸이코>의 구멍 관음씬이 연상되는 이 장면은 불의에 시선의 침입이 범해질 수 있고, 그 침입으로부터 안전지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타자의 침입으로부터의 무력감과 그것에 대한 공포심을 표상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타자의 침입은 위의 시선의 침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시선의 침입은 어느새 관계의 침입으로 변모해 있다. -관계의 침입 <황금 투구>에서 주인공 망다와 메리의 첫 만남씬은 시선의 침입에서 관계의 침입으로의 변모를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망다와 메리가 만나기 전 메리가 르카의 갱 식구들과 앉아 있던 공간을 떠올려보자. 자그마한 원탁이 여러 개 있고 메리와 갱 식구들이 그 주위에 다닥다닥 앉아있는 바로 그 공간이다. 그곳은 불가침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여러 개의 원탁은 밀집된 상태로 정지되어 있고 사람들은 그곳을 둘러앉아 각자의 시선이 외부로 새어 나가지 않고 오직 그 시선이 서로의 식구들에게만 교차하며 외부에서의 시선 침입을 차단하는 한마디로 요새나 다름없는 공간이다. 하지만 이 불가침의 요새는 메리가 다낭과 춤을 추러 그 요새를 빠져나오며 균열이 발생한다. 메리는 다낭과 팔을 포개며 원을 만들고 회전하며 술집의 바닥을 활보하는데 이는 똑같은 원환의 물질이지만 생명력이 없고 회전하지 않으며 정지되어있는 요새의 원탁과 이미지적으로 대구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요새인들에게만 교차할 수 있었던 시선은 그 공간이 회전하고 활보하면서 술집 전체로 발산하여 해방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시선의 종착지에는 다름 아닌 망다가 있었던 것이다. 메리의 시선의 침입을 받은 망다의 표정은 어떠한가. 그 시선의 침입에 철저히 해체돼버린 망다의 표정은 사랑하는 사람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망다는 그 후 메리에게 춤을 요청하는데 이는 그녀를 요새에서 구원하고 그녀를 다낭에게 뺏었다는 점에서 시선의 침입을 철저하게 관계의 침입으로 변모한 것이다. 망다는 원탁 주위에서 결속하고 있던 르카 갱의 관계를 침입한 것이나 다름없으며, 그 침입으로 인해 망다와 메리는 춤을 추며 처음으로 서로의 몸과 몸을 접촉한다. 육체의 침입이 시작된 것이다. -육체의 침입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베케르의 영화에는 육체의 침입이 여기저기 산재하여있다. 지금 바로 떠오르는 것만 해도 1 잔느 모로의 뺨을 때리는 장 가뱅의 손. 2 장 가뱅의 손을 어루만지는 베티의 손. 3 메리의 가슴을 불시에 만지는 르카의 손. 4 잔느 모로의 음부에 삽입하려는 안젤로의 성기. 5 다낭의 등을 찌르는 망다의 칼. 6 망다의 귀를 쑤시는 메리의 풀 등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열거한 육체의 침입에 에로티시즘과 가학성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급한 6개의 예시 중 짝수 번째 예시는 서로 간의 사랑이 전제된 육체의 침입이라면 홀수 번째 예시는 그것이 전제되지 않은 육체의 침입이다. 하지만 그것을 의식하지 않고 위 행위들을 본다면 행위가 서로 유사성을 띠는 것처럼 보인다. 대표적으로 잔느 모로의 음부에 삽입하려 했던 안젤로의 성기는 다낭의 등을 찌르는 망다의 칼과 망다의 귀를 쑤시는 메리의 풀과 행위의 유사성 면에서는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즉 성기와 칼과 풀은 무언가를 쑤신다는 행위에서 구분할 수 없기에 에로티시즘과 가학성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 이로 인해 관객은 안젤로의 성기를 볼 때마다 무슨 일인지 가학성을 느낀 것이고 망다의 칼과 메리의 풀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를 에로티시즘을 느낀 것이다. 이 육체의 침입에 은밀히 공존하고 있는 에로티시즘과 가학성이야말로 베케르 영화의 위대한 점이다. 영화에 산재하여있는 육체의 침입이 현존하였을 때 관객은 그곳에 흐르는 기묘한 에로티시즘과 가학성을 모두 반추하며 그곳에서 풍부한 감성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다. 일례로 <황금 투구>의 엔딩 단두대씬을 보면, 망다가 르카에게 복수하고 경찰에게 체포되어 단두대의 앞에 섰을 때 관객은 단두대의 가학성과 메리의 에로티시즘의 공존으로 인해 복잡미묘한 감정을 겪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날카로운 단두대 날이 망다의 head를 절단하였을 때, 메리의 커다란 얼굴은 마치 발기부전 된 상태와 다름없이 축 늘어진다. 이는 망다의 머리를 참수하는 육체 침입의 가학성이 극에 달한 장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축 늘어지는 메리의 머리가 마치 사랑하는 연인의 머리(남근) 절단과 호응하는 행위로도 보이기에 기묘한 에로티시즘 또한 분출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순간 스크린에서 범람하는 가학성과 에로티시즘의 극한의 공존이야말로 전무후무한 자크 베케르의 풍부하고도 자극적인 영화적 체험에 다름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