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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oung_Wonly

Hyoung_Wonly

3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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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

책 ・ 2012

평균 4.1

여성들을 위한 여류 장편소설 공모가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및 문학상이 그것이다. 제 1회 수상자가 바로 박완서 작가였고, 작품은 <나목>이었다. 여성동아문학상 심사를 맡았던 분 이야기를 어깨 너머로 들은 적이 있다. 심사와 수상작 선정이 마무리 되는 중에 편집부에 문의 연락이 왔다고 한다. 전화를 준 사람은 "여자가 아닌데 어떡해야 하는지" 물었다고. 여성문학 응모조건은 당연히 여성만 응모가 가능하다고 쓰여 있다. 전화를 한 사람은 수상자였다. 그런데 이 수상자가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1로 시작하는, 그러니까 법적으로 남자였던 것이다. 작품은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차분히 전개한 내용이었다고 한다. 누가 읽어도 여성으로서 쓴 글이었다며 심사위원 자격으로 글을 읽었던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나 법적 성별이 남자였으므로 수상은 취소되어야 마땅했다. 본인은 남자가 아니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그 사정을 딱하게 여겨 편집부에 이렇게 말했단다. "문학은 법에 앞선다. 그 사람은 남성이 아니다. 책임진다. 그대로 당선시키자." 시상식 때 수상자 어머니도 참석했고 아들로 태어나 딸이 된 자식의 수상소감을 들으며 통곡하는 바람에, 시상식장이 눈물 바다가 됐다고 했다. . . . 한국 문학의 큰 별들은 하나같이 늙은 남성이거나 청장년 남성이다. 여성들은 나이가 많아져서야 비로소 조금이나마 대우를 받았다. 젊은 여성들은 제외됐다. 90년대 중후반 까지. 여성은, 특히 젊은 여성은 문학 속 묘사의 대상이지 주체가 아니었다. 남자가 여성에 대해 쓰는 것이 문학의 주류였고, 남자가 여성을 그리는 게 예술이었다. 이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고, 문단만의 문제도 아니다. 물론 전처럼 대놓고 차별하는 그런 시절은 이제 끝났다. 하지만 그 버릇이 남은 사람들이 버젓이 세상에 살아있고, 무엇보다 권력이 유지되고 있다. 이 습관은 문학계 뿐 아니라 국가와 세계를 이루는 각종 사회 요소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리고 트랜스젠더 수상자의 이야기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문학이 아무리 법에 앞서더라도 문학계를 주름 잡고 있는 남성들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터진다. 남자는 묘사하고, 여자는 묘사되는 구도를 가진 인류사회와 거기에서 탄생한 유명하다는 문학작품들은 모두 터지고 있다. 나를 틀리고 왜곡되게 묘사해놓은 내용에 분노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