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apture

젊은 베르터의 고통
평균 3.6
감수성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다 겨우겨우 뭍을 발견하고 숨을 돌린다. 아마 젊은 날의 괴테, 혹은 베르터가 바라 본 세상은 나 같은 범인이 바라 본 세상과는 소리의 음계, 색의 채도 수준에서부터 달랐음이 틀림 없었을 것이다. 혹자는 베르터의 생각과 행동을 독선적이고 유난스럽다 느껴 오히려 주변인인 롯테나 알베르트의 입장에 공감하여 베르터를 부정적으로 보고 더 나아가 이 소설 자체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오로지, 그리고 온전히 베르터의 입장에서 그의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는 기쁨, 슬픔, 분노, 질투 등의 모든 인간적 감정들을 가슴에 창을 내고 선보이듯 적나라하게 기술한 작품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베르터는 괴테이자 괴테가 아니다. 이 책이 자살을 하나의 당연한 소재처럼 활용하는 일본의 고전 문학과 근본적으로 다른 부분은, 일본의 작가들 또한 괴테와 베르터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작품 속 주인공을 스스로와 동일시하면서도 그 주인공과 동일한 우울감과 고독감을 평생 극복하지 못하고 같은 길을 택하는 경우가 파다했다면, 괴테는 오히려 <젊은 베르터의 고통>이라는 작품을 통해 부정적인 감정들을 토해냄으로써 세상을 더욱 더 다채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얻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괴테는 소설의 후반부에 가서는 베르터라는 인물보다는 그의 말로를 담담하게 전달하는 편집자에 빙의함으로써 스스로와 베르터라는 인물 사이에 거리를 두고, 독자는 마치 스스로가 빌헬름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잊지 못할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이 작품이 사랑에 좌절한 청년들의 자살을 종용하는 문제작이 아닌, 당시 사회에 염증을 느끼고 사랑마저 거머쥐지 못한 그 누구보다도 감수성이 풍부했던 한 청년의 지극히 건강한 성장통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나는 환희를 느낀다. 예로부터 서양에서 운명적 사랑을 수많은 아름답고 감상주의적인 어휘들로 노래한 작품들은 수없이 존재해왔지만, 유독 <젊은 베르터의 고통>만이 내게 제대로 와닿은 까닭은 베르터의 감정과 고뇌의 과정을 마치 스스로를 해부하듯 적나라하고 자세하게 기술한 덕분도 있겠지만 당시 사회의 분위기나 알베르트 같은 주인공과 대립되는 존재들을 등장시킴으로써 그들에게 좌절하고, 그들을 설득시키려 하는 베르터의 본능적이고 처절한 입장에 분명 나와는 연이 없는 깊이의 감정과 이야기임에도 내가 공감할 수 있게끔 해주었기 때문이다. 밑도 끝도 없이 사랑을 노래하다 비극적으로 끝나버리는 서양의 고전적인 이야기들이 자칫 규칙과 전통 등에 얽매인 동양인들 입장에서는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감상주의적으로 느껴져 완전히 딴 세상의 이야기로 치부될 수 있던 상황 속에서 이 작품은 특유의 너무나도 사실적이고 적나라한 감정들의 묘사를 통해 '대체 어떤 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저토록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기쁨과 고통이라는 극단적으로 상반되는 감정의 격류를 유발하고 삶을 포기하게끔 만들 수 있는 것일까'라는 궁금증을 유발한다. 그리고 이러한 궁금증을 느끼게 되는 과정 속에서 괴테를 향한 일종의 부러움마저 슬쩍 고개를 내민다. 1700년대에 쓰여진 소설을 읽고 눈물을 흘린다는 건 정말이지 일상이라 부르는 것과는 엄청난 거리가 있는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