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맹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평균 3.9
길고 긴 민음사의 13권짜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완독 후 강신주 박사님의 프루스트 읽기 강의를 들으면서 인생의 버킷리스트 하나를 완료했다. 처음에는 읽기가 너무 힘들었지만 그건 프루스트의 단독성때문일 것이다. 하나의 세계를 경험하는 일이 어찌 쉬울 수 있겠는가. 긴 시간 동안 짧은 식견으로 이 고전에 대해 느낀 것은 만연체다 이런 것이 아니라 프루스트는 삶의 편에서 글을 쓴다는 것이다. 서사로 보면 정말 특정한 프랑스 사교계의 별 볼일 없는 사랑 이야기 같지만, 이런 곳에서도 프루스트는 인간의 군상들과 삶의 본질과 지혜들을 서술한다. 그리고 그 평범한 삶에서 느낀 감정들을 집요하게 붙잡고 본질의 깊이까지 탐구하고 사유한다. 오히려 13권인 것이 너무 짧을 정도로. 아니 근데 하나만 전달해주셔도 감사한데 ㅠㅠ 이렇게 많이 주시면 배탈나요. 창작을 위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의 편에서 글을 쓰고 예술을 한다. 아래는 강의 복습과 장마다 느꼈던 것들의 정리 1. 스완의 사랑 사랑의 본질은 대상이 아니라 상황과 어떤 조건일 수 있다는 것. 뱅퇴유의 음악이 아니었다면 사랑하지 않았을 오데트에 대한 스완의 사랑. 바로 그 무의식적 기억, 잃어버린 기억이 불러일으키는 자아를 잃어버리케하는 기쁨의 고양감. 이해받고 싶은 것은 사랑받고 싶어서이고, 사랑받고 싶은 것은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소돔과 고모라 사랑의 본질은 알고 싶어하는 것. 사랑하는 자아를 탄생하기 위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앎이 필요하고 그에 맞게 새로운 자아와 기억을 탄생시키는 과정. 그래서 알베르틴의 동성애성은 화자에게 절대의 미지의 영역이기에 사랑을 더욱 증폭시키는 계기가 됨. 젠더 이분법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모든 사람에게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있고 각기 다른 그런 자아들이 있음.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다른 자아들이 나오는 것. 사랑에 있어서의 젠더는 사랑 이후에 자각되는 것. 인간의 본질은 관념명사가 아닌 인간이 어떤 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느냐에서 오는 것. 3. 갇힌 여인 금기는 욕망의 원천인 것처럼, 불안한 화자의 알베르틴 가두기. 하지만 가두면 가둘 수록 사라지는 알베르틴에 대한 사랑. 사랑하는 사람의 날개를 직접 달아주는 것이 사랑을 지속시킬 수 있는 힘. 다른 자아를 탄생시키는 연인과 그 자아들로 인해 더 알고 싶고 궁금해하게 하는 사랑. 4. 사라진 알베르틴 사랑의 깊이는 고통에서 측정된다. 사랑에 빠진 자아가 상실되었을 때 불쑥 튀어나와서 아무렇지 않게 삶을 영위하게하는 다른 자아들. 사랑의 편집증적 힘은 사랑의 자아가 다른 자아들에게 애도를 요구하는 것에 있을 수도 있다. 사랑의 자아들처럼 과거에 쌓인 지층들로 만들어진 많은 자아들을 만들고 각각 인정하게 하는 과정. 이 낯선 힘들. 이 비자발적 기억으로 인한 자아들이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드러나는 잃어버린 시간과 자아들. 사랑하는 수많은 나들. 사랑의 경험은 단독적인 자아를 탄생시키는 경험이고, 이로 인해 나를 깊게 알아가는 경험이다. 사실 사랑의 조건은 대상이 아니라 내가 가진 욕망의 특성들의 집합체일 수도 있다. 5. 되찾은 시간 사랑을 통해 깨달은 삶의 불완전성. 오히려 완전한 행복은 과거의 문득 튀어나오는 비자발적 기억에 있을 수 있다. 그런 기쁨은 나 자신이 빠져나오는 무아의 느낌이고 죽음과 희열의 경험이다. 어쩌다가 주어진 이러한 기쁨들. 비자발적 기억에 담겨진 수많은 편린들과 되돌아 봤을 때 느껴지는 어떠한 본질들. 삶은 이러한 강렬한 기억들을 최대한 많이 만들기 위해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현재의 자아를 넘어서게 하는 그러한 기억들. 현재의 자아를 시시때때로 비자발적으로 전복하는 그런 과거의 경험들과 자아들. 예술의 고유성은 이러한 기억들을 붙잡아 놓는 것에 있는 것이다. 스완의 뱅퇴유 음악, 프루스트의 발베크와 콩브레처럼. “모든 인상은 두 겹이라고, 절반은 대상에 싸여 있고, 나머지 절반은 우리만이 알아볼 수 있는 우리 자신의 마음에까지 이어져 있다” 결국 어떤 사물과 대상에 대해서 최대한 많은 나만의 기억과 내면이 담긴 언어들 그리고 예술들을 만들어내어 단독성을 획득하는 것. 결국 세계를 풍요로케하는 건 수많은 차이들과 시선들이기에. 헤겔이 말했듯 결국 타자는 자신을 이해하게 하기에. 예술가들은 모두에게는 평범하게 느껴지는 내면의 어떤 기억들을 붙잡아 끈질기게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들. 사랑의 경험도 마찬가지일 것. 내 단독성과 네 단독성으로 단독적인 세계를 만들어내고 서로에게 단독적인 자아를 만들어 주는 것. 진정으로 나를 이해받고 너를 이해해주는 세계를 만드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