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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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month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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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이라는 이름의 여자

영화 ・ 2023

평균 3.5

1. 어떤 이야기는 등장인물을 비극에 비극을 더해, 더는 헤어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로 빠트리곤 한다. 도대체 이런 절망적인 이야기를 왜 만드는 건지, 의문이 드는 이들도 있으리라. 하지만 이야기 속 비극은 어느정도 현실을 닮아있단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리에 유 감독의 '안이라는 이름의 여자' 는 그야말로 비극으로 점철된 인생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에게 학대를 당한 안은, 성매매에 발을 들이고, 마약에 빠져 허우적대는 삶을 살고 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이런 안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음침한 방에서 성매매를 하던 안은, 마약에 취한 남자에게서 돈을 받아내려 하지만. 남자는 돈을 주지 않으려 저항하고. 두 사람은 약에 취한 채 서로 뒤엉킨다. 안의 현실은 처참하다. 초등학교조차 다니지 못해 한자를 읽지 못하고, 마약에 빠져 초점을 잃어버린 눈, 푸석푸석한 머리카락, 그녀의 팔에는 자해의 흉터가 가득하다. 2. 그런 안에게도 구원의 손길은 있었다. 마약과 성매매를 거듭하던 안은 경찰에 체포되지만. 다행히도 그녀를 담당한 형사는 그럭저럭 경력이 쌓인 베테랑인데다, 마약 중독자들의 재활 모임을 이끄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형사는 그녀에게 재활 프로그램을 권유하고. 조금씩 마음을 연 안은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성매매를 그만둔다. 그렇게, 안은 형사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차근차근 재활의 길을 걷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어머니가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줄곧 그녀를 학대했고. 학대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안이 성매매로 돈을 벌어오면, 그 돈은 그녀의 어머니가 모조리 빼앗아간다. 기껏 마음을 고쳐먹어도.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 어머니의 학대 앞에 그녀는 다시금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마음을 다친 그녀는 다시 약물에 의존한다. 이겨내려 해도, 그녀를 둘러싼 현실이 끊임없이 그녀를 물고 늘어진다. 3. '안이라는 이름의 여자' 는 그야말로 안을 절망의 끝까지 몰아붙인다. 세상은 그녀에게 잠깐의 희망을 주었다가, 도로 빼앗아간다. 믿었던 사람의 배신에, 기껏 얻은 일자리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로 폐쇄된다.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안은 추억을 불태우고 절망한다. 도대체 그녀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성매매에 발을 들인 것? 마약에 빠진 것? 그것도 아니라면, 뒤늦게나마 정상적인 삶을 꿈꿨던 것이 그녀의 잘못이란 말인가? 4. 그녀에겐 잘못이 없다. 하지만 고통은 그녀의 몫이었다. 이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의 한 모습이다. 잘못하지 않아도, 마치 죄값을 치르듯 괴로워해야 한다. 이는 박찬욱 감독의 작품 속 염세주의적 세계관과 맞닿는다. '복수는 나의 것' 에서 누나를 위해 착한 유괴를 꿈꾼 류는 결국 살인범이 되고. 졸지에 딸을 잃어버린 동진은 인간성마저 버린 복수귀가 된다. 끝내 기구한 복수에 성공했지만. 동진 역시 눈 깜짝할 사이에 살해당한다. 류도, 동진도, 처음부터 살인범에, 복수귀였던 게 아니다. 상상도 못했던 우연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안의 경우도 비슷하다. 그녀를 끊임없이 옥죄는 어머니도, 일자리를 빼앗은 코로나 바이러스도, 믿었던 이의 반전도. 그녀의 잘못이 아니다. 5. '안이라는 이름의 여자' 는 어떤 면에선 현실과 닮았다. 가정폭력은 쉽사리 대물림되고, 가난도 대물림된다. 하물며, 성매매로 무너진 인생마저 대물림되는 것을 비현실적이라 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재난으로 삶을 잃어버린 이들도 있다. 당장 우리 곁에도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있었다. 재난으로 목숨을 잃고, 가족을 잃는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보며 너무 염세적이라거나, 이렇게까지 비극으로 점철된 이야기를 만들 필요가 있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충분히 일리있다. 하지만 세상엔 희망과 아이러니를 머금은 웃음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게 있듯, 이런 끊임없는 비극을 통해서만 비춰질 수 있는 것도 있으리라 믿는다. 어쩌면 거짓된 희망이 자기기만일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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