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백_

백_

8 years ago

4.0


content

노르웨이의 숲

책 ・ 2017

평균 3.9

알고 보면 야설은 아니다. 조르주 바타유는 에로티즘에서 성관계란 두 불연속체가 스스로의 완고한 경계를 무너트리고 타인과 일시적 연속을 구현해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유성 생식에서 이루어지는 일시적 합일을 끊임없이 구현해가는 존재가 인간이라고도. 이 소설의 특징은 관계가 무너질 때, 죽음을 감지할 때 꼭 성관계 혹은 성관계 비슷한 행위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그럴싸해보이는 말로는 타나토스를 극복하기 위한 에로스의 추동 과정, 그렇게 적을 수도 있지만 사실 이 소설에서 눈 여겨 보아야 하는 부분은 그렇게 행위해야만 하는 인간의 연약함이다. 인체에 일어나는 과정을 볼 때(동공 확장 심박수 증가 체액 분비의 양 등을 보았을 때), 성관계는 술과 담배처럼 쾌락을 위한 자기 파괴의 과정 중 하나로 읽을 수 있다. 타인과 자신 사이의 공허를 견디기 위해 궁극적으로 스스로를 파괴해나가는 인간의 허약함, 그러면서도 결국 미도리를 향하는 와타나베처럼 연속성을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삶이란 무엇인지 생각케 한다. 하지만... 세 여성상의 전형성이나 인물의 비합리적 행동 양식은 뭐랄까 아직 어색하고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