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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맹

상맹

3 years ago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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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방

책 ・ 2006

평균 3.9

고전 클라스. 사진에 대한 현상학적, 실존적, 매체적 단상들. 매체철학을 이런 에세이로 개인적으로 하신다는 것 자체가 미치셨다. 책 자체가 푼크툼. --------------------------------------------------------------------------------------- 되살아나게 하는 것. 사진이 정보값 혹은 충격이 아니라 동요. 즉 현존, 존재적으로 되살아나거나 현상학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 그런 것은 의도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명명할 수 없이 나를 찌르고 내 안의 무언가를 불러일으키는 것. 나를 붙들고 생각에 잠기게 하는 것. 틀 밖으로 끌고가고 시야밖의 미묘한 영역의 푼크툼. 사진은 사물이 거기 있었다라는 걸 증명하는 것. 노에마로서의 사진. 스투디움의 포르노 푼크툼의 에로티시즘 사진의 본질은 포즈이다. 죽은 것의 살아있는 이미지. 죽었다는 것에서 오는 푼크툼. 사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존재했던 것을 다만 확실하게 말한다. 사진의 인증력은 재현력을 능가한다. 나는 사진을 깊이 파고들 수도 꿰뚫어 볼 수도 없다는 법칙을 따라야 한다. 나는 정지된 표면처럼 시선으로 사진을 끌고 가는 일밖에 할 수 없다. 사진은 모든 의미에서 평평하다는 사실, 이것이 내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사진은 암실이 아니라 밝은 방을 언급해야한다. 왜냐하면 시선의 관점에서 보면 '이미지의 본질은 내밀함 없이 전적으로 바깥에 있으나 내면의 사유보다 더 접근할 수 없고 더 신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명시적인 의미는 없지만 가능한 모든 의미의 깊이를 부른다.' 그것은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 온힘을 기울인다. 우리가 사진을 깊이 파고들 수 없다면 그 이유는 그것이 지닌 명백함의 힘 때문이다. 내가 이 사진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의 확실성에 비례한다. 우리가 사진을 깊이 파고들 수 없다면 그 이유는 그것이 지닌 명백함의 힘 때문이다. 사진의 평평함은 보다 고통스럽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것은 무언가 말할 수 없는 것을 통해서만 나의 광적인 욕망에 응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위기이다. 분위기를 놓쳐서는 안된다. 사진은 나에게 이상한 영매, 새로운 환각형태이다. 지각의 차원에서는 허위이지만, 시간의 차원에서는 진실한 환각 형태이다. 이를테면, 수수하고 분할된(한편으로 지금 "그것은 거기에 없고," 다른 한편으로 "하지만 그것은 분명 존재한다") 온건한 환각이다. 그것은 현실의 광적이고 엷게 문질러진 이미지이다. 광기를 누르는 방법, 예술로 만들거나, 일반화시키고 군서적으로 만들며 평범화시키는 것이다. 이미지가 세계를 완전히 탈현실화시킨다. 더 이상 믿음을 소비하지 않고 이미지를 소비한다는 것. 덜 광신적이지만 더 허구적이라는 것. 이미지의 보편화 - 차이 없고 흥미 없는 세계의 생산. 사진의 두 길. 문명화된 코드에 종속시킬 것일까, 사진 안에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완강한 현실의 꺠어남과 대결할 것인가. <-> 영상은 몽상적이지, 과거 착시적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