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한국 코미디에 편견과 멸시가 들게끔 장르의 위상을 바닥으로 추락시키는 이병헌. 한두번도 아니고 이런 취향인듯한 욜로 영포티 신하균. 무엇을 재밌다고 생각하는지, 주로 어떤 농담과 개그를 구사하는지 보면 사람의 스타일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코미디를 만드는 것은 창작자의 자아가 많이 반영되는 것인데 그럴수록 세계관에 과몰입 하지 않고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을 어떻게든 변명하고 포장해서 어필하고 싶은 사람일수록 창작에도 자기 반성과 견고한 시선에 실패한다.
그레타 거윅 감독의 레이디 버드와 비교해보면 바람 바람 바람은 처참한 졸작이다. 거윅은 감독으로서 첫 작품이지만 이미 성숙한 작가로써 다층적인 현실을 포착해 극을 유연하고도 단단하게 진두지휘한다. 대사를 정말 잘 썼고 편집점들이 절묘해서 감정을 증폭시키는 리듬이 출중하다. 이로 인해 영화에 모두 공감하지 않아도 감동을 받는 것이다. 코미디를 터뜨리는 타이밍이 좋고 다루는 애정의 방식도 지지한다. 재능이 출중한데 과신하지 않는 연출. 그 시절을 노스탤지어에 젖어 과도하게 미화하지 않고 주인공 외에 주변인들도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도구로 이용하지 않는다. 꽤 많은 인물들이 나오는데 서사가 분산되기는 커녕 그들과의 교류와 갈등을 통해 십대소녀의 정체성을 입체적으로 그리는데 성공한다. 유일하게 카일이란 캐릭터에 냉정한 태도를 보였는데, 알고 보니 거윅 감독의 학창시절 자전적 캐릭터가 레이디 버드가 아니고 카일이라서 그렇게 엄격했던 것이다. 그때 영화가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코미디는 작가적 역량을 필요로 하며 나태하지 않고 나대지 않아야 품격을 지킬 수 있다.
한국식 코미디는 누군가를 철저히 재물로 삼는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가장 만만한 사람을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고 다같이 깔깔거리는 정서를 그대로 구현한 장르가 한국식 코미디다. 사회적 약자가 손쉬운 먹이감이다.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등 한국 코미디 장르가 지속적으로 모욕을 가하는 단골들이다. 발정이라도 났는지 과장된 섹스코드를 꼭 집어넣는데 여성을 희롱하는 것쯤은 기본이다. 마치 그것들이 없으면 성인 코미디가 아닌 것처럼 구는 이상한 강박까지 느껴질 정도다. 코미디는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반성없이 내뱉기만 하면 되는 장르가 아니다. 희화화의 대상과 사건도 제한적일 수 있다. 코미디는 반드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아야 웃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언제까지 한국 코미디를 싸구려 만듦새와 언어의 쓰레기통이 당연한 것처럼 취급할 것인가.
코미디도 엄연히 장르인데 비판하지 말고 즐기라니? 토 달지 말고 그냥 웃으라고? 웃겨야 웃지 인간들아. 생각없이 보면 웃길 수 있나? 그건 슬랩스틱 코미디에서나 가능한 말 아닌지? 옳지 않은 것을 느끼고 있지만 사고하지 않고 그냥 즐기고 싶다는 말 아닌가. 비판하면 재밌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비난한 것이 되나? 영화에서 구사한 개그들이 너무도 자기 취향이라 영화가 비판받는 것 자체를 못 견디는 사람들이야 말로 한국 코미디 장르의 질적 발전을 저해한다.
나도 과거에는 한국식 개그에 비판적이지 않았다. 농담은 별거 아닌 것이라고 생각했고 다들 웃으니까 그런가보다 생각했었지. 하지만 세심하면서도 재밌는 것들을 접하고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코미디 장르 자체를 다양성이 아닌, 타 장르보다 떨어지는 하위장르쯤으로 치부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실을 반영한 개그는 단순히 개그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영향력을 가진다는 것을 통감하는 바, 한국식 농담과 유머, 개그, 코미디 장르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농담이라고 묵과하던 것들이 이젠 그렇게 하기가 힘들어졌을때 왜 그런 것인지, 그 동안 왜 그런 것들을 유머라고 즐겼는지 반성이 필요하다. 지금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영화든 일상이든 유머는 소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