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하울

금각사
평균 3.9
"무언가 씻어 없앨 수 없는 열등감을 지닌 소년이 자신을 은근히 선택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이 세상 어디엔가, 아직 내 자신도 모르는 사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이 책을 처음 만난건 2015년 3월의 마지막 주였다. 당시 나는 김해 진영읍에 위치한 시립 도서관에 유배된 상태였다. 말하자면 스스로를 타지에 가뒀었다. 내가 이뤄야할 목적을 위해서 였다. 나는 스스로 의지가 무척이나 박약된 인간임을 알았기에, 10여년 만에 돌아오는 고향에서 글 이외의 것을 생각하지 못할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매일 아침 낮은 산등성이가 둘러쌓인 촌구석에 있는 도서관을 갔다. 사실 아침이 아니었다. 점심, 아니면 해질녘 그무렵. 시간이 지날 수록 엉망진창이 되던 나의 각오들이 역겨웠다. 자꾸만 남에게 의존하려 드는 나약한 인간인 내가, 아무에게도 말 못할 아픔을 가진 내가 싫어졌던 시기였다. (모든 인간이 그렇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꽤 오랜 세월이 들었다.) 낯선 고향에서 점점 자신의 것들을 잃어가는 청년이 일본 문학 d열에서 찾아낸 금각사의 첫 문장을 읽었을 때, 느끼는 감정은 내 생의 어떤 섹스보다도 황홀했다는 말로 밖엔 표현 할 수 없다. 나는 그 책을 빌려 문장들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한 페이지를 세네번씩은 속으로 되뇌며 읽었다. 때로는 뇌안에서 문장들을 크게 소리쳐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목적을 잊어버렸다. 모든 봄을 금각에서 보냈다. 이윽고 가족과의 갈등이 깊어진 나는 다시 살던 곳으로 되돌아왔어야 했다. 나는 금각의 마지막 장을 아직 읽지 못한 상태로 삶의 다른 하찮은 바쁨들에 의해 서서히 금각을 잊어갔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왜 금각을 다른 곳에서 빌리거나 구입하지 않았냐고? 우스운 이야기로 들릴 수 도 있겠지만, 나는 이 책이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라는 인간의 지각안에서는. 그리고 어둠마저도 두려워할 어둠의 깊은 곳에 금각이 우두커니 서있는 환상을 본다. 내가 언제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고있든, 행복하든 슬프든 죽고싶을 만큼 외롭든 간에. 스스로가 지울 수 없는 열등감에 의해서 이 세상의 바다 어두운 곳에서 표류하고 있을 때면 항상. 금각이 말을 걸어온다. 금각이 불러온다. 어떤 언어로도 번역할 수 없는 무지한 호수의 목소리로. 오늘 나는 김해시 진영읍에 있는 시립 도서관에 들렀었다. 아버지의 발인을 마치고 오는 길이다. 지금 나는 그 목소리가 그 어느 때 보다도 선명하게 들린다. 손에 쥔 금각사를 바라본다. 단숨에 마지막 장으로 넘어가 못다한 이야기를 끝맺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천천히 환상의 지리멸렬한 근거들을 답습할까. 손은 바들거리면서 떨리고 낡아 누렇게 변색된 페이지는 땀이 젖어간다. 어째서인지 모르게 충혈 된 눈이 눈물을 쏟고 싶어하는 듯하다. 단 하나만은 확실하다. 이 책은 결코 d.431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