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학의 정수를 담은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제3권, 《금각사》
노벨문학상 후보에 세 차례나 오른 ‘작가들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남긴 탐미 문학의 절정을 만나다!
일본의 문화와 정서가 담긴 문학을 엄선해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을 깊이 이해하자는 취지로 20년 만에 새 단장을 시작한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의 세 번째 작품이 출간된다. 이번 작품은 탐미 문학의 대가이자 노벨문학상 후보로 세 차례나 거론된 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대표작 《금각사》다. 작품에서는 말더듬이에 추남이라는 콤플렉스를 안은 채 고독하게 살아가는 주인공 미조구치가 절대적인 미를 상징하는 ‘금각’에 남다른 애정과 일체감을 느끼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섬세하고 유려한 언어로 그려낸다. 미시마 문학 특유의 미의식과 화려한 문체, 치밀한 구성으로 정평이 난 《금각사》는, 1950년에 일어난 실제 방화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어 쓰인 ‘시사 소설’인 동시에 작가의 내면이 반영된 ‘고백 소설’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작품에는 젊은 시절의 고뇌와 더불어 말년에 극우 사상에 심취하기 전 작가가 거쳤을 내적 갈등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간행된 지 반세기가 넘은 지금까지도 《금각사》는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탐미주의 문학의 걸작이자 소설의 바이블로 자리매김하며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남에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점이 나의 유일한 긍지였다.”
금각의 아름다움과 정반대에서 억눌려 살던 말더듬이 추남의 고뇌
탄탄한 서사, 치밀한 구성을 가능하게 한 실화의 힘
추남인 데다 말더듬이에 내성적인 성격의 주인공 미조구치는 유년 시절부터 고독한 삶을 살아왔다. 작은 절의 스님이었던 아버지는 “금각처럼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없다”라고 말하곤 했고, 미조구치는 추한 자신과는 정반대에 있는 ‘금각’을 미의 상징으로 여기며 남다른 애정과 일체감을 느끼게 된다. 그 방식은 실로 독특했다. 이제껏 아름다움에서 소외되어 있었다고 자부하던 그는, 예상치 못한 폭격이 난무하는 전쟁 상황에서 비로소 절대미의 상징인 금각과 한낱 추한 말더듬이에 불과한 자신이 동일한 존재로 거듭난다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도 금각은 흠집 하나 나지 않은 채 여전히 견고하고 빛나는 자태로 존재감을 과시했고, 미조구치는 다시 혼자가 된 기분에 휩싸이며 좌절한다.
인물들의 심리가 복잡하게 시시각각 변함에도 불구하고 구성이 치밀하고 서사가 탄탄하게 이어질 수 있던 것은, 바로 《금각사》가 1950년 일어난 방화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어 창작된 ‘시사 소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시마 유키오는 약 5년에 걸쳐 금각사 방화 사건과 범인인 하야시 쇼켄의 삶을 면밀히 취재했고, ‘인간의 소외’와 ‘미에 대한 질투’라는 하야시의 증언에 주목했다. 물론 이는 하야시 쇼켄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30대를 맞이한 미시마 유키오가 육체미 운동에 집착한 이유 역시, 허약하게 태어난 데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결국 극 중에서 미조구치가 몸의 콤플렉스로 인해 열등감에 휩싸이고, 아름다움에서 소외된 자신의 처지를 견디다 못해 금각을 파멸시키려는 일련의 과정은 작가 자신의 맨얼굴이기도 한 셈이다.
‘논란 속의 작가’이자 노벨문학상 후보에 세 차례나 오른
미시마 유키오가 문학적 전환기에 써 내려간 ‘고백 소설’
‘쇼와의 귀재’라는 별명에 걸맞게, 미시마 유키오는 23년의 집필 기간 동안 180편의 소설과 60편의 희곡 그리고 막대한 분량의 수필 및 평론을 발표했다. 그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금각사》는 미시마 유키오를 당대 최고의 작가로 거듭나게 한 역작이었다. 이 작품으로 그는 1957년 요미우리문학상을 수상한 데 이어, 1963년부터 1965년까지 연달아 세 차례나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일본의 문학평론가 우스이 요시미가 “이렇게 자신을 가득 채워 소설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랍다”라고 평했던 것처럼, 《금각사》는 미시마 유키오의 문학적 전환기에 쓰인 ‘고백 소설’이다. 타고난 불안 심리와 예민한 감수성에 초점을 맞춰 창작 활동을 이어온 초기와는 달리, 30대에 접어든 그는 능동적으로 ‘자기 개조를 시도’하는 육체적 지성에 주목한다. 이러한 시도가 처음 행해진 것이 《침몰하는 폭포》였고, 궁극적으로 완성된 형태를 이룬 작품이 《금각사》였다.
“나는 너에게 알려주고 싶었다구. 이 세계를 변모시키는 건 인식이라고. 알겠냐, 다른 것들은 무엇 하나 세계를 바꾸지 못해. 인식만이 세계를 불변인 채로 그대로의 상태에서 변모시키지. 이 삶을 견디기 위해서 인간은 인식을 무기로 삼게 됐다고 할 수 있지.”
“세계를 변모시키는 건 절대로 인식이 아니야”라고 나는 얼떨결에 고백에 가까운 위험을 무릅쓰고 반박했다. “세계를 변모시키는 건 행위야. 그것밖에 없어.”
-본문 중에서
극 중에서 주인공 미조구치가 안짱다리인 가시와기의 도움으로 인식의 세계에서 벗어나 ‘행위자’로 거듭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나약했던 지난날의 자신을 내던지고 육체미 운동에 열중하여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는 작가의 의지와 맞닿아 있다. 《금각사》가 간행된 지 14년 후, 미시마 유키오는 할복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자신을 개조시키면서까지 삶을 살아내려던 그가 어쩌다 극단적인 죽음에 이르렀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여전히 미시마 유키오가 말년에 걸었던 행보는 짙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어, 개인적으로나 문학적으로나 중요한 분기점에 쓰인 《금각사》가 지닌 가치는 여전히 생생하다. 작품에는 젊은 시절의 고뇌와 더불어 극우 사상에 심취하기 전 그가 거쳤을 내적 갈등의 실마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세월의 흐름을 넘어선 감동이 있다.
마지막 한 줄까지 음미해야 하는 작품이다.” _일본 아마존 독자 서평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탐미 문학의 절정!
인간의 근본적인 딜레마를 섬세하고 유려한 문체로 그려내다
《금각사》와 미시마 유키오에 따라붙는 수식어들은 다양하지만, 그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탐미주의 문학의 대가라는 것은 모두가 합의하는 사실이다. 미시마 유키오가 말년에 걸었던 극우적 행보와는 별개로, 그의 독특한 미의식과 유려한 문장, 치밀한 구성, 섬세한 심리 묘사를 평가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일본의 근대 비평을 확립한 문학평론가 고바야시 히데오는 《금각사》를 두고 “소설이라기보다 매우 아름다운 서정시”라고 극찬하며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기풍에 거듭 감탄했다. 베스트셀러 《냉정과 열정 사이》를 쓴 작가 쓰지 히토나리 역시, “《금각사》만 수십 번 넘게 읽었다”라고 말하며 미시마 유키오에 대한 애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미라는 관념은 천박하고 바보 같지만 국보에 방화하는 범죄 동기로는 충분할지도 모른다.
-미시마 유키오, 《누드와 복장-일기》(1959)
미시마 유키오 문학에서 ‘아름다움’이 더욱 빛을 발하는 이유는, 자신의 내면과 외부 세계를 일치시킬 수 없어 자기혐오에 빠지고 마는 근본적인 딜레마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인 이상, 완전무결한 대상에 매료되면서도 한없이 위축되기 마련이다. 금각 같은 절대미를 선망하지만 그에 못 미치는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하다 끝내 우상을 파멸시키려는 미조구치나 하야시 쇼켄 같은 면모를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금각사》는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존재가 품은 심연을 적나라하게 내보이고 있다. 문장은 한 편의 서정시처럼 더욱 돋보이고, 인물들의 심리 묘사는 미세한 떨림이 전해질 정도로 섬세하며, 아름다움 자체를 표현할 땐 화려하지만 결코 과하지 않다. 그렇기에 출간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금각사》는, 수많은 작가들이 습작하는 ‘소설의 바이블’이자 전 세계 독자들의 감성을 건드리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탐미 문학의 걸작’으로 그
sean park
4.5
우리가 그토록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멸시하기 때문이다
권혜정
4.0
미에 대한 질투나 열등감의 서술로 이 책을 이해한다면, 신기하게도 작가의 변태적 성향에 공감이 가능해진다.
김하울
5.0
"무언가 씻어 없앨 수 없는 열등감을 지닌 소년이 자신을 은근히 선택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이 세상 어디엔가, 아직 내 자신도 모르는 사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이 책을 처음 만난건 2015년 3월의 마지막 주였다. 당시 나는 김해 진영읍에 위치한 시립 도서관에 유배된 상태였다. 말하자면 스스로를 타지에 가뒀었다. 내가 이뤄야할 목적을 위해서 였다. 나는 스스로 의지가 무척이나 박약된 인간임을 알았기에, 10여년 만에 돌아오는 고향에서 글 이외의 것을 생각하지 못할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매일 아침 낮은 산등성이가 둘러쌓인 촌구석에 있는 도서관을 갔다. 사실 아침이 아니었다. 점심, 아니면 해질녘 그무렵. 시간이 지날 수록 엉망진창이 되던 나의 각오들이 역겨웠다. 자꾸만 남에게 의존하려 드는 나약한 인간인 내가, 아무에게도 말 못할 아픔을 가진 내가 싫어졌던 시기였다. (모든 인간이 그렇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꽤 오랜 세월이 들었다.) 낯선 고향에서 점점 자신의 것들을 잃어가는 청년이 일본 문학 d열에서 찾아낸 금각사의 첫 문장을 읽었을 때, 느끼는 감정은 내 생의 어떤 섹스보다도 황홀했다는 말로 밖엔 표현 할 수 없다. 나는 그 책을 빌려 문장들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한 페이지를 세네번씩은 속으로 되뇌며 읽었다. 때로는 뇌안에서 문장들을 크게 소리쳐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목적을 잊어버렸다. 모든 봄을 금각에서 보냈다. 이윽고 가족과의 갈등이 깊어진 나는 다시 살던 곳으로 되돌아왔어야 했다. 나는 금각의 마지막 장을 아직 읽지 못한 상태로 삶의 다른 하찮은 바쁨들에 의해 서서히 금각을 잊어갔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왜 금각을 다른 곳에서 빌리거나 구입하지 않았냐고? 우스운 이야기로 들릴 수 도 있겠지만, 나는 이 책이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라는 인간의 지각안에서는. 그리고 어둠마저도 두려워할 어둠의 깊은 곳에 금각이 우두커니 서있는 환상을 본다. 내가 언제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고있든, 행복하든 슬프든 죽고싶을 만큼 외롭든 간에. 스스로가 지울 수 없는 열등감에 의해서 이 세상의 바다 어두운 곳에서 표류하고 있을 때면 항상. 금각이 말을 걸어온다. 금각이 불러온다. 어떤 언어로도 번역할 수 없는 무지한 호수의 목소리로. 오늘 나는 김해시 진영읍에 있는 시립 도서관에 들렀었다. 아버지의 발인을 마치고 오는 길이다. 지금 나는 그 목소리가 그 어느 때 보다도 선명하게 들린다. 손에 쥔 금각사를 바라본다. 단숨에 마지막 장으로 넘어가 못다한 이야기를 끝맺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천천히 환상의 지리멸렬한 근거들을 답습할까. 손은 바들거리면서 떨리고 낡아 누렇게 변색된 페이지는 땀이 젖어간다. 어째서인지 모르게 충혈 된 눈이 눈물을 쏟고 싶어하는 듯하다. 단 하나만은 확실하다. 이 책은 결코 d.431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파니핑크
3.0
군국주의와 자기도취에 경도된 한 문학가는 자신만의 탐미를 완성하기 위해 자위대 건물에서 할복 자살 쇼를 열게 되는데...! 그 쇼가 개봉박두하기 전의 예고편들 중 가장 유명한 예고편일 듯.
희연희
5.0
스포일러가 있어요!!
정태균
4.0
미를 탐구할수록 자신의 추가 부각되는 모순. 미의 정점을 찍은 것은 우리를 밑바닥까지 끌어내리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그것을 알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
준용
4.5
살다가 글을 이런 수준으로 쓰는 사람은 처음 봄 허울 뿐인 으스대기가 아니라 진실로 농밀한 문장에 압도 당하는 기분을 체험할 수 있음
channy
3.0
이런 종류의 문장을 구사하는 이는, 심한 강박을 갖고 있는 변태거나, 본인도 무슨 말인지 모르고 이야기하는 자거나 둘 중 하나다. 미시마 유키오는 물론 전자다. 그의 삶이 이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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