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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일

오세일

7 month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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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투구

영화 ・ 1952

평균 3.6

누아르 장르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특징이 도드라지지는 않는다. 진득한 정서와 뒷세계 특유의 잔혹한 모습 대신, 한 여자를 둔 세 남자의 갈등이 서사의 주가 된다. 그에 따라 누아르라기엔 영화의 무드가 줄곧 여유롭다. 폭력 대신 풍경이 보이고, 사람이 보이고, 사랑이 보인다. 물론 장르의 어법 상 폭력이 돌출되는 순간은 있지만, 그렇다고 영화는 폭력을 단지 쾌감을 위한 전시의 행위로써 소비하지 않는다. <황금 투구>의 폭력은 거칠게 두 가지의 장면으로 나눌 수 있다. 망다와 로랑의 싸움과, 단두대 처형 씬. 전자의 싸움은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관객들을 같은 장소에 세워뒀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리액션 숏 없이 다소 싱겁게 결판이 마무리된다. 단두대 처형 씬 또한 목이 잘리는 찰나는 물론, 카메라는 그 흔한 피 한 방울도 허용하지 않는다. <황금 투구>에서 폭력은 그저 서사의 일부에 불과하다. 영화 속에서 진정으로 악당이라 불릴 만한 자는, 어쩌면 르카 한 명뿐일지도 모르겠다. 망다와 메리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오히려ㅡ그들에 비해 확연히 적은 분량의ㅡ르카 부하들의 존재가 사뭇 흥미롭다. 망다의 자수 소식을 듣고 절망에 빠진 메리를 향해 '잘될 거야'라며 위로를 건네는 한 마디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들은 동료의 죽음에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자들이다. 뒷세계의 일을 전전하고 있지만, 그들은 언제나 마음속에 자신들이 '인간'임을 끊임없이 상기한다. 그에 반해 르카는 동료의 죽음을 보고도, 눈물은커녕 매정하게 뒤돌아 버린다. 결국 그는 '뼛속까지 악당'인 존재답게 그에 걸맞은 최후를 맞이하며, 그 순간의 폭력 역시 허무하게 넘겨진다. 마치 동료의 죽음을 보고 매정하게 뒤돌아버린 자신의 처신처럼. 영화가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 또한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이를테면 망다의 쓸모 가치를 판단한 뒤, 조직 내에서 쓸모를 다했다고 판단되는 로랑과의 싸움을 유도하는 르카의 악독함. 망다가 이긴다면 그를 자신의 조직원으로 섭외할 기회를 잡는 동시에, 메리를 정부로 품을 기회 또한 주어진다. 로랑이 이긴다면, 현재의 생활을 그대로 이어가면 될 뿐이다. 이처럼 겉으로는 허허실실 하지만, 정작 속을 들여다 보면 이토록 계획적인 악당의 무서운 이중성을 재현한 방식이 재미있다. 망다는 또 어떠한가. 결혼식이 진행 중인 교회에 들어가기 직전, 서둘러 담뱃불을 끄고 불이 꺼진 담배를 귀에 걸려다 멈추고 잽싸게 가슴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그 역시 힘 좀 깨나 쓰고 자칫하면 망나니로 오인될 수 있는 인간상이지만, 사실은 개념과 예의를 아는 청년이었음을 영화는 시사한다. <황금 투구>는 자크 베케르의 '사람'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