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상훈남

1980
평균 2.6
2024년 09월 05일에 봄
아무도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식당을 차리고 이웃과 잘 지냈으며 가족을 사랑하기만 했다. 어떤 비극이 일어나도 함께 뭉친다면 이겨낼 수 있다는 행복한 꿈을 꾸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 죄 짓지 않은 자들은 모든 걸 빼앗긴다. 한 사람의 명령으로 말이다. 식당은 쑥대밭이 되고 이웃에게는 총을 겨누게 되며, 사랑하는 가족은 더 이상 볼 수가 없게 된다. 도대체 무엇을 남기고 싶었던 걸까. 왜 그렇게까지 짓밟고 싶었던 것일까. 무엇을 위해. “갸들이 먼저 놀렸당께.” “갸들은 니 말고 영희네 놀렸다는디.” “긍게 영희도 우리 식구잖여.” “그랴, 니 말이 맞지. 우짤 때는 한 지붕 한 가족이라고 했는디 시국이 이렇다고 인제 와서 그러믄 안 되지.” 부자연스러운 전개, 1980년대 분위기를 살리기 위한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구시대적인 연출, 21세기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배우들의 어설픈 연기력, 연출의 역량이 부족한 감독이 비교적 관객들이 관심을 끌 수 있는 소재를 이용하기만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거운 소재의 이야기와는 달리, 전체적인 영화의 무게감은 가볍기 짝이 없었다.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캐릭터의 밸런스 또한 엉망이었으며 특히 인물들의 변심에 대한 동기부여가 하나도 정교하질 않아 각인물들에 대한 감정이입이 하나도 원활하지 않았다. 인물들은 많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이야기가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았다. 도무지 관심을 가질래야 그럴 수가 없었다. “가지 마라.” “아부지, 늦었어라. 참말로 늦었당께.” 스토리에 있어서 발생되는 사건은 곧 영화의 몰입력을 결정한다. 사건을 관객들에게 인상깊게 각인시키고 그 이후의 부연설명을 하는 게 일반적인 작품의 흐름인데, 이 영화는 그런 사건사고들이 굉장히 무미건조하게 다뤄지고 있다. 한마디로 연출에 포인트와 콘셉트가 뚜렷하지 않다. 연극적인 장치들을 이용하여 극의 분위기를 잔잔하게 만들기 위한 의도였다기엔 영화 곳곳엔 자극적이려고 보이려고 애쓴 듯한 흔적들이 남아있다. 그렇기에 영화의 몰입도가 떨어지고 눈둘 곳의 여유를 찾게 된 관객들에게 이 영화의 결함은 더 잘 보이게 된다. 악순환인 것이다. 어떠한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실망스러운 작품이었다. [이 영화의 명장면] 1. 빨갱이 내가 고통을 느낀다면 상대도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삶을 살아가면서 당연히 고통을 느끼게 되어있다. 그 말인즉슨 우리는 항상 타인의 고통에 민감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군인들은 그런 게 없다. 마치 아무나 붙잡고 빨갱이로 만들고 싶다는 폭력적인 의지가 느껴질 정도로 마구잡이였고, 아무 잘못 없는 어르신을 쓰러뜨리기까지 한다. 우리가 저 공간 속의 아들이었다면 아무리 두렵다 한들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타인의 고통따위는 아무 상관 없다는 식의 어리석음 앞에 분노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라고 달랐을까. 나라도 군인에게 덤볐을 것이다. “느작없는 새끼야, 니는 애미 애비도 없냐.” 2. 5월 27일 제일 무서웠던 장면. 서서히 변하는 강신일의 표정은 웬만한 공포영화 하이라이트 장면보다 공포스러웠으며, 이전에 잠시나마 느꼈던 극속 평화로움과 곧바로 대비되어 정말 충격적인 광경을 보게 되었다. 이 사건은 '이런 장르는 대개 신파를 범벅이는 감동유발을 앞세우진 않을까'식의 예상을 완전히 깨부수는 최악의 비극사건이었으며, 어떻게 보면 계속해서 잔잔하게 흘러간 이전의 전개가 이 장면을 위한 빌드업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무서웠다. 이 장면만큼은 나도 그 자리에 있었던 것만큼 끔찍했다. 아직도 그 잔상이 보이는 것만 같다. 기억하기엔 끔찍하지만 그럼에도 해야 하는 영화적 메시지가 잘 담긴 것 같기도 했다. “성님, 오늘따라 요 짜장면 맛이 기똥차분디, 웃기는 짜장이여.” “이 사람이, 고거이 웃기는 짜장이 아니야, 고거이 낙지 짜장이라는 거이야. 우리 둘째가 개발한 거이디.” “시방, 상두 칭찬한 거지라? 오늘이 뭔 날은 날인가베. 아부지가 상두 칭찬을 다 하시고.” 이제 보면 정말 끔찍한 그 날의 광경 그렇기에 잊을 수 없으며 영원한 기억은 다시는 그 날의 고통을 반복시키지 않을 수 있다 별이 되어버린 그 날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들 수는 없으니까 “시뻘건 피를 흘리며 쓰러진 사람을 군화로 차고 짓이겼다는 것이다. 여학생, 남학생 가릴 것 없이 옷을 벗기고 치고 차고 총검으로 마구 찔러댔다는 것이다. 아, 이것이 대한의 국군인가. 누가 이들을 미치게 했는가. 국민을 살상하라고 명령한 원흉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