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sallypark

아무튼, 비건
평균 3.6
비건의 핵심은 거부가 아니라 연결에 있다고 했지만 정작 작가의 언어는 전혀 열려있지 않았다. 채식주의자로서 기대하도 읽은 책이지만 실망만 했다. 우선 정신병자, 에스키모, 아프리카, 장애인의 반대 단어로 일반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 이렇게 단어들만 봐도 그렇다. 문장들은 더 실망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작가가 비건을 비교할 때 쓰는 언어들이다. 1. 여성들이 평균적으로 남성보다 타자에 대한 공감 능력이 뛰어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말 전형적인 성차별) 2. 개는 반려동물, 돼지는 식용, 붕어는 관상용… 한국은 심지어 같은 개도 애완용과 식용으로 나누니 어디서부터 얘길 해야 할지 난감하다. 비슷한 예로, 자신의 어머니와 누이, 배우자, 애인, 딸은 극진히 존중하고 아끼면서 ‘업소 여성’은 막 다뤄도 된다고 생각하는 일부 남성들의 사고방식이 있다. (도대체 왜 이런 비교를) 3. 남성으로서 비건을 한다는 것은 여기에 한 차원을 추가한다. 여성이 비건을 하면 “살 빼려는 모양이군”이라고 제멋대로 해석해 넘어가주기라도 한다면, 남성은 그 의도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남성성을 의심받고, 무례하고 무지한 질문들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하며,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사람들을 안심시키기까지 해야 한다. (이것도 전형적인 역차별 같은 말인데, 여성 비건이 정말 저 말을 들으면 넘어가줘서 감사할까? 남성 비건이 무례하고 무지한 질문들에 여성 비건보다 과연 더 많이 시달릴까. 남성 비건이 여성 비건의 삶보다 더 힘들다는 소리를 할 수 있다니, 그 남성성에 대한 말들이 남성들이 만든 가부장제로 인한 것임을 모르는걸까) 4. 하지만 위선으로 상황을 무마하지 않고도 상대방을 존중하며 예의 바르게 말하는 방법을 찾아볼 수는 있다. 이런 상황을 떠올려본다. 나는 노예제가 있는 시대에 태어난 노예반대론자이다. 친한 친구의 집에 갔는데 집에서 노예를 부리고 있는 걸 눈앞에서 보게 된다. 안 그래도 마음이 불편한 상황인데, 내가 노예반대론자라는 걸 알고 있는 친구가 직접적으로 물어본다. “넌 내가 이러는 게 불편해?” (도대체 왜 이런 비교를 또,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을 하면서 어떻게 채식과 노예제를 비교할 수 있는지 기가차다) 5. 커밍아웃을 한 동성연애자들도 매끼마다 성 정체성이 화제에 오르내리진 않는다. 최소한 연애는 사적인 영역에 속한다는 암묵적인 합의라도 있는데, 음식은 누구든지 한마디 할 수 있는 영역으로 인식되어 있으며, 단체 식문화가 발달한 한국은 그 폐해가 더 심하다. (성소수자들이 매끼마자 무슨 말 듣는지 작가는 모르는 것 같다. 이성애 연애는 사적인 영역에 속할 수 있겠으나 비이성애 연애는 음식마냥 누구든지 한마디씩 뱉는데 이게 무슨 말, 왜 자꾸 이런 비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