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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비건
김한민 · 에세이
17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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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시리즈 17권. 작가 김한민은 어느 날 무언가를 보았고, 알게 되었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변화를 시도했다. 시도의 결과는 좋았고, 시간이 갈수록 더 좋았으며, 그러다 보니 이제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졌다. 그 변화란 바로 동물을 먹지 않으며, 동물의 털과 가죽으로 만든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비건'으로 살아가는 일이다. <혜성을 닮은 방>, <비수기의 전문가들>, <카페 림보> 등 개성 있는 그래픽 노블을 펴낸 작가이자 해양환경단체 '시셰퍼드Sea Shepherd' 활동가이기도 한 김한민 작가는 한때는 남들처럼 고기를 즐겼던 자신이 어떻게 비건이 되었으며, 어떻게 이를 지속해오고 있는지, 그리고 결국은 동물이 어떻게 자신에게로 다가왔는지 이 책에서 차근차근 풀어내고 있다. 아울러 '비건적인' 작은 노력들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하면서, 완벽함에 매몰되지 않고 천천히 비건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비건에 대해 자주 나오는 질문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형식으로 비건의 논리와 철학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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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 소개
『아무튼, 비건』, 이야기는 간단하다
작가 김한민은 어느 날 무언가를 보았고, 알게 되었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변화를 시도했다.?시도의 결과는 좋았고, 시간이 갈수록 더 좋았으며, 그러다 보니 이제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졌다. 그?변화란 바로 동물을 먹지 않으며, 동물의 털과 가죽으로 만든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비건’으로 살아가는 일이다.
나는 어떻게 비건이 되었으며, 어떻게 이를 지속해오고 있는가
『혜성을 닮은 방』, 『비수기의 전문가들』, 『카페 림보』 등 개성 있는 그래픽 노블을 펴낸 작가이자 해양환경단체 ‘시셰퍼드Sea Shepherd’ 활동가이기도 한 김한민 작가는 한때는 남들처럼 고기를 즐겼던 자신이 어떻게 비건이 되었으며, 어떻게 이를 지속해오고 있는지, 그리고 결국은 동물이 어떻게 자신에게로 다가왔는지 이 책에서 차근차근 풀어내고 있다. 아울러 ‘비건적인’ 작은 노력들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하면서, 완벽함에 매몰되지 않고 천천히 비건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비건에 대해 자주 나오는 질문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형식으로 비건의 논리와 철학을 보여준다.
공장식 축산, 동물은 오로지 죽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다
김한민 작가는 책에서 육류와 유제품의 생산과 소비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 진실을 나누고자 한다. 오늘날의 공장식 축산에서 가축은 식용을 위해 생산되고 처리되는 공산품일 뿐이다. 그곳에서 동물들에게 삶이란 없다. 죽기 위해 태어난 존재. 그래서 오직 고통뿐이다.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밀집 사육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관리자들이 동물을 학대하고 구타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열악한 환경에서 동물들이 병에 걸릴 확률과 치사율은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이들을 살려두는 것은 항생제 과다 투여뿐이다. 병든 동물들은 방치되거나 산 채로 쓰레기처럼 버려진다. 더구나 단시간 내에 최소 비용으로 도살하기 위해 벌어지는 일은 도살업체들이 말하는 ‘인도적 도살’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진실이 커다란 거짓말에 가려져 있다. 바로 고기를 먹어야 건강할 수 있다, 채식만 하는 건 건강에 해롭다, 라는 거짓말이다. 이에 김한민 작가는 육류와 유제품은 백해무익하며 비건으로도 충분히 건강하게, 아니 오히려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확신을 자신의 경험과 과학적 정보들을 통해 입증한다.
사람들은 비건을 실천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참 피곤하게 사네.”
“너 혼자 그런다고 변해?”
“세상이 그렇게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아.”
참으로 익숙한 말들이다. 페미니즘, 성소수자, 난민 이슈 앞에서도 흔히 들어온 말이니까.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에 갇히면 우리는 오로지 자신의 안위를 위한 노력에만 골몰하다가 세상에 조금의 긍정적 영향도 주지 못한 채 삶을 끝내게 될 것이다. 반면,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근본적인 변화를 깊이 받아들여 일상에서 작게나마 실천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문제를 자각했을 때 “최소한 나라도 이 상황에 기여하고 싶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변화가 멀어 보여도 그 변화를 믿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비건이 ‘명사’보다 ‘형용사’이기를 희망하며
비건의 목적은 완벽함을 이루는 데 있지 않다. 지구와 동물들에게 끼치는 고통을 최소화하고 더 건강하고 윤리적인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실천하는 데 있다. 완벽한 비건 몇 명이 존재하는 것보다는 다수의 사람들이 좀 더 ‘비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사회 전체로 봤을 때 훨씬 효과적이라는 주장이 있다. 동물을 살리는 데도, 환경을 보호하는 데도, 공중 건강을 위해서도 말이다.
김한민 작가 스스로도 완벽하지 못함을 인정한다. 그러나 매일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는 노력만큼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일단 비건-친화적인 사회가 되기만 한다면, 실천도 점점 쉬워지면서 비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완벽하지 못할 바엔 시작도 안 하겠어”보다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태도에 가치를 두는 것이다. 그래서 비건은 정체성이나 명사이기 이전에 형용사라고 말한다. ‘비건적인’ 작은 노력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의미를 부여한다면, 비건은 소수자 운동을 넘어서서 영향력 있는 대규모 소비자운동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고 김한민 작가는 힘주어 말한다. 실제로 어떤 나라들에선 그런 변화가 지금 일어나고 있다.
비건의 핵심은 ‘거부’가 아니라 ‘연결’에 있다
비건이 되는 건 어린아이였을 때 누구나 갖고 있던 동물과의 직관적 연결 고리를, 거대 산업과 영혼 없는 전문가들이 단절시킨 풍부한 관계성을 스스로의 깨우침과 힘으로 회복하는 일이다. 결국『아무튼, 비건』은 바로 그 연결을 실천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cb
3.5
주위에 비건이 비교적 많고 스스로 죄책감은 갖고 있었으나 각종 핑계와 뚜렷한 근거 없는 걱정들로 플렉시테리언이니 최대한 줄여 먹느니 하는 말들을 하던 내가 본격적으로(?) 비건을, 락토오보도 무엇도 아닌 비건으로 시작하겠다고 마음먹게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고 아주 기분이 좋다. 책에게 고맙다. 그러나 108페이지 하단의 ‘정신병자’워딩을 쓴 문장은 명백히 장애혐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거니즘이 페미니즘을 비롯한 소수자인권을 위한 흐름과 결코 무관하지 않음은 자명한데, 어째서 이런 책에서까지 장애혐오 워딩을 봐야 하는 걸까. 씁쓸했다.
연화
2.0
"커밍아웃을 한 동성애자들도 매끼마다 성 정체성이 화제에 오르내리진 않는다" 또는 "여성으로서 비건을 하면 "살 빼려는 모양이군"이라고 제멋대로 해석해 넘어가주기라도 한다면, 남성은 그 의도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남성성을 의심받고, 무례하고 무지한 질문들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하며" 같은 비교가 도대체 왜 필요했는지 의문. 정말 동성애자 보다 비건의 삶이 힘들고 여성 비건 보다 남성 비건의 삶이 힘들까요.
126🏳️🌈
2.5
감정적 이유로 시작한 비건은 지속되기 어렵다고 해 놓고 책에는 감정적 호소가 대부분이다. ‘비건이 명사가 아닌 형용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열린 태도를 강조해 놓고 몇 페이지 뒤에서 육식주의자들을 두고 ‘시시한 핑계나 댄다’고 은근한 경멸을 드러내는 것은 좀 실망스럽다. 그래서야 사람들이 ‘비건들’을 자신과 다른 무리로 배격하지, ‘비건적’이 될 수가 있겠나? 또한 동물권을 논의하면서 ‘비건이 되면 스스로에게 좋기 때문에’ 비건이 되어야 한다고 함께 주장하는 것은 서로 배치되지 않는지.. (지나치게 인간 중심주의적이다) 나는 현대 한국 에세이의 이런 소구방식(남에게 내 말을 주입하기/남이 하는 말을 받아먹기)을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기도 싫은 듯하다. 육식 포기하기 싫어서 쓴 코멘트처럼 보일까 봐 걱정되내 저는 집에서는 비건식을 유지하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임니다..
H.
3.0
내 이기심과 무관심을 누가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지. 나는 더 책임감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
당근
2.5
아무튼, 비건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들한테는 폭력적인 예시들 한가득 하여튼, 남성 작가는 자기가 제일 지성인인 줄 알아
정유선
2.0
비건이 아닌 사람들을 비판하기보다, 비건이 된 이후에 좋은 점들을 나눴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주로 반박하는 식으로 논지를 구성했으나 근거가 논리적이지 않아 설득력이 떨어진다. 은근히 (아직)비건이 아닌 사람들을 비난하는 뉘앙스의 고압적인 자세가 드러나는데 좀 불편하다.
small_Bird
4.0
"비건의 핵심은 거부가 아니라 연결에 있다." 동물권리를 위해 스스로 생활방식을 바꾼 사람들. 그들에게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감시할 것이 아니라, '비건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다수의 '불완전한 비건'들이 늘어나야할 필요성을 느낀다. . "동물을 사랑하지 않아도 식용동물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비건을 결심했다." 모 웹툰작가의 말에서부터 시작된 관심.
thesallypark
2.0
비건의 핵심은 거부가 아니라 연결에 있다고 했지만 정작 작가의 언어는 전혀 열려있지 않았다. 채식주의자로서 기대하도 읽은 책이지만 실망만 했다. 우선 정신병자, 에스키모, 아프리카, 장애인의 반대 단어로 일반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 이렇게 단어들만 봐도 그렇다. 문장들은 더 실망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작가가 비건을 비교할 때 쓰는 언어들이다. 1. 여성들이 평균적으로 남성보다 타자에 대한 공감 능력이 뛰어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말 전형적인 성차별) 2. 개는 반려동물, 돼지는 식용, 붕어는 관상용… 한국은 심지어 같은 개도 애완용과 식용으로 나누니 어디서부터 얘길 해야 할지 난감하다. 비슷한 예로, 자신의 어머니와 누이, 배우자, 애인, 딸은 극진히 존중하고 아끼면서 ‘업소 여성’은 막 다뤄도 된다고 생각하는 일부 남성들의 사고방식이 있다. (도대체 왜 이런 비교를) 3. 남성으로서 비건을 한다는 것은 여기에 한 차원을 추가한다. 여성이 비건을 하면 “살 빼려는 모양이군”이라고 제멋대로 해석해 넘어가주기라도 한다면, 남성은 그 의도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남성성을 의심받고, 무례하고 무지한 질문들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하며,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사람들을 안심시키기까지 해야 한다. (이것도 전형적인 역차별 같은 말인데, 여성 비건이 정말 저 말을 들으면 넘어가줘서 감사할까? 남성 비건이 무례하고 무지한 질문들에 여성 비건보다 과연 더 많이 시달릴까. 남성 비건이 여성 비건의 삶보다 더 힘들다는 소리를 할 수 있다니, 그 남성성에 대한 말들이 남성들이 만든 가부장제로 인한 것임을 모르는걸까) 4. 하지만 위선으로 상황을 무마하지 않고도 상대방을 존중하며 예의 바르게 말하는 방법을 찾아볼 수는 있다. 이런 상황을 떠올려본다. 나는 노예제가 있는 시대에 태어난 노예반대론자이다. 친한 친구의 집에 갔는데 집에서 노예를 부리고 있는 걸 눈앞에서 보게 된다. 안 그래도 마음이 불편한 상황인데, 내가 노예반대론자라는 걸 알고 있는 친구가 직접적으로 물어본다. “넌 내가 이러는 게 불편해?” (도대체 왜 이런 비교를 또,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을 하면서 어떻게 채식과 노예제를 비교할 수 있는지 기가차다) 5. 커밍아웃을 한 동성연애자들도 매끼마다 성 정체성이 화제에 오르내리진 않는다. 최소한 연애는 사적인 영역에 속한다는 암묵적인 합의라도 있는데, 음식은 누구든지 한마디 할 수 있는 영역으로 인식되어 있으며, 단체 식문화가 발달한 한국은 그 폐해가 더 심하다. (성소수자들이 매끼마자 무슨 말 듣는지 작가는 모르는 것 같다. 이성애 연애는 사적인 영역에 속할 수 있겠으나 비이성애 연애는 음식마냥 누구든지 한마디씩 뱉는데 이게 무슨 말, 왜 자꾸 이런 비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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