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ngik Kim

귀신들의 땅
평균 3.8
#귀신들의땅 그래 이게 콘텐츠다. 아주 대단하고 아주 재미있다. 근데 사람들이 안읽을거같다.. 통상 소설의 구성 3요소로 인물 사건 배경을 꼽는다. 이중에서 아무래도 가장 중요도가 높은 것은 인물이지 않을까 싶다. 결국 '이건 누구의 이야기냐'하는 것이 가장 직관적인 질문일테니까. 요즘의 웹소설을 보면 그것이 극단적으로 강화되어있는 모습을 많이 보게된다. 먼치킨 주인공이 모든 사건을 해결하며 이야기 속 배경을 휘젓는 - 소위 원탑물이 디폴트니까. 그러니 주인공, 인물이 도드라지지 않는 소설은 덜 직관적이다. 사건조차도 불분명한 소설은 더욱 그렇다. <귀신들의 땅>은 인물과 사건이 앞서지 않는 소설이다. 정확히는 인물과 사건이 그 배경 - 세계관을 설명하는데 복무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인데' 하는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 천쓰홍은 대만의 작은 시골, 용징이라는 곳에서 태어나 지금은 베를린에서 살고 있는 작가다. 그리고 게이다. <귀신들의 땅>은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작중 인물인 '천톈홍'이 작가의 오너캐이기는 하나, 이야기는 톈홍의 여정을 따라가지 않는다. 그냥 톈홍의 가족과 그 가족의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올리며, 톈홍을 둘러싼 사회 - 용징과 타이베이, 베를린 -를 '보여준다'. 톈홍의 할아버지와 부모를 포함해 형제 7남매들이 모두 등장하고, 옆 가족의 사연과 심지어 동네의 서점 주인장들도 등장한다. 챕터별로 인물들의 이야기가 각자의 시점을 넘나들며 그려지기 때문에 좀 복잡하다. 진짜 인물 관계도가 없으면 흐름을 놓치기 일쑤니까. 그런데 이 군상극에 적응되기만 하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가부장제, 배금주의, 여성혐오와 남아선호, 동성애와 소수자 혐오로 이루어진 시골 사회의 축축하고 무거운 삶을 그대로 경험할 수 있게 된다. 톈홍의 7남매는 모두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톈홍의 누나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사회의 폭력에 상처받으며 살아간다. 목숨을 끊은 형제도 있다. 톈홍 역시 게이라서 차별받고 베를린으로 도망치듯 쫓겨나 가족과 연을 사실상 끊은 채로 살다 같이 살던 애인을 살해하고 징역을 살았다. 소설 속에서는 출소한 톈홍이 고향 용징으로 돌아온 만 하루 정도만 다루는데, 그 하루만으로도 충분하다. 약한 이들에게 유독 보수적이고 폭력적인 사회를 경험하기에는. 문장이 정말 아름답고 번역도 훌륭하다. 과하게 느껴질 정도로 꾹꾹 눌러담은 문장들은 아주 선명하고 또렷해서 천씨 가족들의 삶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대만 시골의 일상은 물론 기후까지 보일 지경이다. 뭔가 글에서 눅진한 습기가 느껴질 수준이랄까. 자전적인 이야기라 그런지 작가가 맘먹고 그려낸 세계의 해상도가 대단히 높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들에게는 읽기가 좀 버거울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읽어볼 만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나와 다른 이의 삶을 이런 고해상도로 체험할 수 있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이다. 특히 나처럼 그냥 이 사회의 뻔한 메이저리티로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공부 차원에서라도 읽어봄직. 이제 막 3월이지만 어쩌면 올해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