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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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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month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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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영화 ・ 2025

1시간가량 남짓한 이 짧은 영화에는 딱히 주연이라 할 배우도, 서사를 이끌어 갈 대사도ㅡ사실상ㅡ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주인의 행방이 부재한 빈집들의 모습이 연이어 등장한다. 마치 내가 영화의 시작과 함께 버스 창가에 앉아 곤히 잠들어 있던 청년의 옆자리에 합석한 채, 창밖으로 유유히 시골의 풍경을 바라보는 듯한 이미지들의 연쇄. 어쩌면 '버려졌다'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그 빈집들은, 모두 하나같이 누군가의 방문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 벽에 구멍이 나고 지붕은 날아갔지만, 언제나 재건의 꿈을 꾸며 버스의 청년처럼 잠시 깊은 잠에 빠져있을 뿐이라는 듯이 늘 똑같은 자리에서 고요하게. 그들도 한때에는 청년과 같은 '목적지를 그리워하는 이들'을 품어주던 따스한 공간이었음을 아직 잊지 않았다는 듯이 말이다. <집으로>에서는 아파트, 즉 현대식 건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나무판자를 덧대어 벽을 세우고, 지열을 피하기 위해 고상가옥을 고수하는 추억의 건축물만이 프레임 내부를 채울 권리를 갖는다. 그래서 <집으로>에서는 특유의 냄새가 난다. 나무 냄새, 못 냄새, 흙냄새, 그리고 사람 냄새. 어쩌면 누군가는 그 냄새를 통해 도심으로 떠나기 전 살았던 옛 시골(고향)의 집을, 또 누군가는 명절마다 방문하는 할머니 댁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집으로>는 관객을 특유의 향취로 매혹하며, 그 향에 매혹된 관객은 각자만의 노스탤지어를 더듬기 시작한다. 영화라는 창문의 프레임을 통해 가보지 않은 공간, 겪어보지 않은 문화를 바라보며 우리는 묘한 감각의 열병을 앓는다. 그러나 그 열병을 앓는 순간이 이상하리만치 기분이 좋다. 그렇기에 <집으로>는 결국 영화를 보는 우리가 극장을 나와 다시 '나의'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다. 영화는 우리가 평소에 집으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늘상 밟는 길의 모습을 편히 상상할 수 있도록 하나의 시선을 제공해 준 것뿐이며, 우리는 그저 매일같이 카드를 찍고 타는 마을버스를 머릿속에 그려보면 된다. 덕분에 나는 부산에서 약 300km가 떨어져 있는 천안의 한 마을을 그려봤으며, 이제는 더 이상 집에 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 항상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터미널 앞, 터미널을 지나면 금새 차분해지는 외곽 골목, 귀에 꽂았던 이어폰을 빼고 하루를 마칠 루틴을 실행하는 집 앞까지.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지루하기만 했던 나의 일상이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집으로>가 고맙다. 그래서 <집으로>는 우리 모두의 사적인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