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HBJ

HBJ

7 years ago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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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 잭의 집

영화 ・ 2018

평균 3.4

'살인마 잭의 집'은 칸 영화제에서 관중이 박차고 나가기도 했으나, 끝났을 때에는 기립 박수를 받은 영화다. 라스 폰 트리에가 연쇄살인마 영화를 만들었으니 그럴만도 하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며, 한 편으로는 어떻길래라는 호기심이 들었다. 우선 이 영화를 보기 위해 통과해야할 관문이 있는데, 바로 수위다. 이 영화에는 잔인한 장면들이 조금 있긴 하지만, 잔인함 그 자체보다는 행위의 역겨움과 비도덕성이 이 영화의 진정한 잔인함이다. 이 불쾌한 장면들을 피하지 않고 감내를 하면, 점차 이 영화에서 라스 폰 트리에가 하고 싶었던 말들이 들리게 된다. 이 영화는 연쇄살인마 잭이 지옥의 안내자인 버질과의 대화로 시작하며, 잭이 그가 저지른 수많은 살인들 중 무작위로 뽑은 5개의 순간들을 그에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 구조는 감독의 전작인 '님포매니악'에서와 판박이라고 보면 된다. 잭은 버질에게 그의 범죄와 이를 저지르며 들었던 생각과 가치관, 그가 살인마로서 어떤 예술관을 가지고 범죄를 저지르는지, 인간과 세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 본인의 캐릭터를 일일이 설명한다. 그의 각 범죄 행위들이 영화의 5개의 에피소드들을 이루며 그 이야기들은 모두 결국엔 잭의 잔혹한 살인 과정을 다룬다. 각 에피소드들은 다 비슷한 이야기와 결말이 있으나 조금씩 무언가가 다르다. 초반의 에피소드들은 피식거리며 보기 딱 좋은 짖궂은 코미디처럼 느껴졌으나, 뒤에 있는 에피소드들은 감독이 정말 미쳤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끔찍하고 경악스러웠다. 에피소드들의 시간적 순서가 불명확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의도적으로 감독이 배치한 구조라고 생각하는데, 아마 그의 짖궂은 유머 감각을 이해하는 관객이라면 초반의 코미디를 통해 잭에 대해 호감을 가지거나, 적어도 너무 적대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계산한 것 같다. 이후에 숨겨둔 발톱을 꺼내며 관객에게 일종의 충격 요법을 사용하기 위한 일종의 포석이라고 생각한다. 이 모든 살육이 벌어지는 와중에, 잭과 버질의 대화도 계속된다. 그들의 대화는 주로 잭의 뒤틀린 가치관과 그에 대한 버질의 반박으로 이뤄져있는데, 이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아마 잭의 독특한 예술관과 그 예술관이 일반적인 상식과 통념에 얼마나 어긋나는지라고 생각한다. 잭의 살인 행위도 엽기적이지만, 그의 생각이 묻어나는 대사들을 듣다보면 정말 보통 미친 놈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 대화와 대화 도중에 나타나는 자료영상들에서 몇 가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점들을 찾을 수 있는데, 이 중 하나는 건축에 대한 이야기다. 영어 제목처럼, 이 영화에서 잭은 집을 짓고 있기도 한다. 기술자 겸 건축가인 잭은 살인과 건축을 겸업하며 두 가지 분야에서 각자의 예술적 완벽함을 추구한다. 잭의 모든 활동은 그를 만족시킬 만한 예술 작품을 향한 그의 갈망이 표출되는 형식이다. 건축이라는 테마에 연관 지어 보면, 이 영화에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하나의 장소가 있다. 이 장소는 잭의 예술적 작업실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의 내면이기도 하다. 차갑고 딱딱하고 폐쇄적인 공간에서 잭은 그만의 뒤틀린 예술을 발전시키지만, 영화 말미에는 일종의 판도라의 상자처럼, 초반에 잠시 나온 이 공간의 맥거핀이 해소가 되며 잭은 세상과의 대화를 시작한다. 영화를 보면서 잭의 행위들이나 버질과의 대화, 에필로그의 난해한 전개 등은 관객이 각자 해석하거나 고민해볼 여지는 분명 있으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 영화는 라스 폰 트리에가 본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잭은 곧 라스 폰 트리에 본인이다. 이는 굉장히 명백하다. 폰 트리에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변태적인 괴짜 관심 종자"라고 봐도 될 정도로 그는 상당히 자극적인 영화들을 만들고 불쾌한 말들을 뱉기도 했다. 나치 발언으로 칸 영화제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를 정도로 사고를 친 그는 자신이 만든 작품들과 본인의 예술관과 세상에 대한 생각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에 대한 자가적 진단을 하기 위해 자신을 투영시킨 잭이라는 연쇄살인마의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어두운 면들을 정당화시키거나 자신에 대한 비판을 반박하려는 것도 아니며, 그저 본인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본인이 어떤 인물이며 어떤 결함들을 가지고 있는지를 솔직하게 토로하려고 하는 것이다. 말로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치 발언 때처럼 오해받을 수 있으니, 아예 영화로 만들어 버린 것 같다. 그리고 라스 폰 트리에답게 아주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표현 방식을 써서 말이다. 라스 폰 트리에는 본인이 얼마나 뒤틀렸는지를 당당하게 인정하는 작품을 만들었으며, 이에 대한 호불호는 폰 트리에의 가치관을 인정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갈릴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폰 트리에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을 하기도 했으며, 연쇄살인마 잭의 머리 속에 나를 쏙 집어넣어주는 연출력을 보며 그의 예술적 감각에 감탄했다. 그와 별개로 영화가 너무 길다고 생각이 들긴 했고, 너무 반복적인 장면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2시간 반이나 되는 긴 러닝 타임에서 분명이 줄일 수 있는 부분들이 꽤 있었으나, 너무 늘어지는 부분들이 분명 중간중간에 있긴 했다. 음악도 반복적이었는데 굳이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자료 영상들의 몽타주도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맷 딜런의 연기가 아주 훌륭했다고 평하고 싶다. '살인마 잭의 집'은 라스 폰 트리에의 자아성찰, 자가진단 그리고 고해성사다. 그의 변태적인 문법과 이미지와 생각들을 참을 수 있냐 없냐가 이 영화의 진정한 호불호 포인트다. 연출, 이야기와 메시지에 동의를 할 필요는 없으나, 적어도 라스 폰 트리에가 왜 영화계에서 독보적인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재확인시켜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