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해

나생문 (라쇼몽)
평균 3.8
예술을 위한 예술에서 저잣거리로 아쿠다카와 류노스케의 단편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6번. 울주도서관에서 빌려 근 한달을 질질 끌어오다 추석 연휴에 끝을 내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이제 민음사판 활자도 작게 느껴진다. 핸드폰과 유튜브에 혹사 당한 눈은 점점더 책이 싫어진다. 이러면 안되는데 류노스케는 젊어서 예술지상주의에 침윤되어, 자기자신을 신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한마디로 니체류의 초극사상이랄 수 있다. 이러한것들을 배경으로 탄생한 작품이 <지옥변>이랄 수 있다. 불에 타 죽어가는 딸 아이를 보면서 지옥의 풍경을 완성하려는 그러한 시도. 이처럼 이 작가는 예술지상주의, 찰라의 아름다움에 집중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에서 벗어나 이작가가 도달한곳은 저자거리 혹은 이 지상이라고 할 수 있다. <두자춘>에서는 신선이 되는것을 포기하고 주인공은 지옥에서 어머니가 겪는 비참한 광경에 입을 열지말라는 금기를 어기고 어머니를 외친다. 신선이 되는것보다는 고통을 겪는 인간을 향한 외침, 그것이 이작가가 도달한 지점이다. 그것은 어쩌면 단편 <랴쇼문>의 세계와 닮아 있다. 비오고 음침한 라쇼문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시체의 머리카락을 뽑아 가발을 만들어 판다거나, 그런 노파의 옷을 빼앗아 달아나는 사람들, 그 세계가 저자거리의 세계이다. 영화 라쇼문의 원작으로 알려진 <덤불 속>은 이 작가의 최고의 작품인듯. 잘알다시피 진실이란 얼마나 주관적인지 하는것을 잘보여준다. 작가는 이작품의 말미에 <중유의 어둠속>을 말하는데 여기서 중유란 불교용어로 사람이 죽고 난후 다음생으로 가기전까지의 49일간을 가리킨다고한다. 중유의 어둠속을 헤메는 중생으로서의 인간 또한 저잣거리의 인간들이 아니겠는가? 이상하게도 이 작가에게서는 자전적 소설들이 드물다는 생각을 했다. 대부분이 기존에 있는 설화나 이야기들을 자신의 시각으로 재구성하여 보여주는듯 했다 이런 의미에서 작가들이란 일종의 수집가들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본다. 소설은 원래 패관들이 모아 기록한 이야기에서 시작했다 이런 의미에서 작가들이란 그 세상에 돌아다니는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살을 붙여 세상에 내놓는 자들이 아닐까. 이 작가도 그런 패관의 한명이라는 생각이든다 23 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