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JE

JE

3 years ago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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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타임

영화 ・ 1967

평균 4.1

2023년 03월 01일에 봄

미끄러지는 소통, 빈번한 단절, 반복적인 오인, 쏟아지고 휩쓸리는 군중 속에서 얼굴을 잃는 몰개성한 개인들. 모든 게 반듯하고 정연해서 숨막히고 건조한 무채색의 도시에 말 없는 산책자가 내던져진다. 말 그대로 길을 잃고 헤메는 여정인데다, 세상과 모든 공간, 그 안의 사물-물질, 혹은 시청각적인 감각을 낯설고 곤혹스럽게 뒤틀어버리는 체험. 윌로 씨가 미로 같은 사각 공간 안에 저마다 갇혀 있는 회사 안 풍경을 마주하는 장면에서 압도하는 기하적인 아름다움과 역설적인 공포 같은 것. 또, 그리스 조각상 쓰레기통이나 윌로 씨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해 마구 화내던 사장이 "무소음 문"을 세게 닫을 때 (여타 가득 메운 소음과 대비되게) 한없이 조용하던 대목들이 인상적이었다. 회화적이면서 정교한 카메라와 피곤할 정도로 일반적인 정보량을 초과하던 사운드 디자인이 웃음을 만들어내는 한편 신경증적인 고통이나 씁쓸함도 동반해버리는 게 참 묘했다. 그럼에도, 마치 도시 속에 숨어 있던 이상한 나라 같은 "로열 가든"에 이르면 모든 게 헝클어진다. 반듯하게 깔아둔 대리석 하나가 대뜸 말썽을 부리며, 시퀀스의 도입부에서부터 그토록 정연하던 세계에 균열을 새기는가 하면, 인물 간의 어긋남, 인물과 사물, 인물과 공간 간의 부정교합이 점차 매혹적인 불협화음을 이뤄간다. 영화 전반부를 괴롭히던 단절과 오인은 과장된 해프닝과 엉뚱한 웃음으로 범람하고, 급기야 포드의 어떤 영화들처럼 둘러싼 모든 게 부서지고 부서트려지는 난장으로 치닫는다. 무엇보다 윌로 씨를 번번이 가로막으며 단절과 오인을 불러 일으키던 유리(문)는 산산이 부서지며 웃음을 극대화하는 순간이 되기까지. 그야말로 앞서 축조해온, 건조하고 질식적인 (공간이자 건축물인) 질서를 해체하며 엉망진창이 되어가는 소동극. 이토록 맥락 없이 무질서한 시퀀스를 보고 있자면, (포드의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기묘하지만 매혹적인 별세계가 되는 듯싶다. 그렇게 난장의 밤이 지나고 나면, 세상은 거의 놀이공원으로 변모해있다. 여전히 소란하지만 경쾌한, 형형색색의 활력이 감도는 도시. 쌓아 올려놓곤 다시 해체한, 건조한 질서와 활력적인 무질서를 거쳐 탄생시킨 새로운 세상. 이런 것도 일종의 변증법적인 풍경이라 할 수 있을까. 인물과 공간과 사물과 사운드가 함께 치받고 또 공명하는, 어쩌면 포드적으로도 느껴지는, 화합의 시네마 같다. 차갑게 줄지은 가로등마저 작고 귀여운 꽃에 빗대어 버리는 재치야말로 거대하게 압도하던 도시의 질식성을 단숨에 무너트리는 소소한 낭만이자 사소하지만 따스한 화합의 징표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