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타임
Playtime
1967 · 코미디 · 프랑스, 이탈리아
2시간 4분 · 1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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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온 비즈니스맨인 '윌로 씨'는 낯설고 무표정한 고층건물과 애매한 공간 때문에 어리둥절하면서 때마침 미국인 단체 관광단과 여기저기서 부딪힌다. 그러던 중 그는 새로 개업한 '로얄 가든' 레스트랑에서 만난 관광객 바바라라는 여성과 친해진다. 뭔가 어색했던 저녁 시간은 윌로의 유쾌한 행동으로 즐거움과 로맨틱한 파티 무드가 밤늦게까지 계속된다. 이튿날 아침 관광단은 공항으로 향하고 그녀는 위로 씨로부터 작은 백합 꽃다발을 건네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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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det
5.0
현재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3월 26일까지 진행되는 ‘자크 타티 회고전 - 윌로와 친구들’이 열리고 있다. 이 회고전에서는 단편을 포함한 자크 타티의 전작과 찰리 채플린, 버스터 키튼, 막스 브라더스, 해롤드 로이드, 로렐과 하디, 피에르 에텍스, 블레이크 에드워즈 등 훌륭한 코미디 영화들이 함께 상영된다. 이중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이자 역대 최고의 영화 중의 한 편으로 손꼽히는 자크 타티의 <플레이타임>을 추천하고자 한다.(<플레이타임>은 2023년 3월 15일 수요일 오후 5시에 마지막으로 상영된다.) 아직 이 영화를 못 보신 분들은 이번 기회에 꼭 보시기를 바란다. 아래는 예전에 썼던 추천 글이다. 우울한 기분마저 즐겁게 바꾸어버리는 영화의 마법이란! 몇 일 전에 자크 타티의 <플레이타임>을 오랜만에 다시 보고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뜬금없지만 이 영화에 대한 예찬을 몇 자 적어보기로 했다. 내가 가끔 같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권하는 글을 sns에 올리는데 <플레이타임>도 주변 지인들을 끌어모아서 좌석을 매진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지인들 중에 이 영화를 본 사람들도 많이 있으니 아직 안 본 사람들 중에서 그렇게 하고 싶다는 뜻이다. 이 즐거움과 경이를 나만 느끼는 것은 왠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단 한 명이라도 이 영화를 보러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플레이타임>은 자크 타티의 최고작이자 영화 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 중의 한 편임에 틀림없다. 지난 주에 다시 보면서 너무 감탄한 나머지 이 영화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이 영화를 정말 너무 사랑한다. 오랜만에 다시 봤는데 앞에서 이미 말했듯이 여러가지 일로 우울한 기분마저 이 영화가 즐거운 상태로 바꿔버렸다. 그래서 몇 일 전에 올렸던 이상 흥분 상태에 대한 글에 나온 것처럼 이상 흥분 상태가 재발되어서 <플레이타임>을 보고 온 날 또 다시 밤을 꼴딱 새고 말았다. 영화가 한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란 무섭다. 이번에는 긍정적인 의미로서 말이다. <플레이타임>에서 타티는 그를 공간 미학의 거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영화적 공간을 탁월하게 구현해내며 그 공간을 이용해서 설계한 놀라운 시각적인 개그들을 보여준다. <플레이타임>은 아무리 매 프레임 속의 인물과 사물을 열심히 봐도 한번에 전체 상황을 캐치해서 모든 디테일에 반응하는 게 불가능하다. 이 영화는 주로 롱 쇼트로 찍은 장면이 많은데 딥 포커스 기법으로 프레임 안에 있는 모든 피사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런데 타티는 대부분의 이런 쇼트를 다양한 모습으로 움직이는 사람들로 시종일관 빼곡히 채워서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눈이 적절한 순간마다 적절한 대상을 시종일관 따라다니지 않는 이상 화면 안에 있는 정보를 모두 파악하기가 정말 힘들다. 나는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서 이런 영화를 보면 늘 패배감을 느낀다. 지난 주에 볼 때도 시각적 개그를 포함해서 놓친 게 여러 개 있었다. 그런데 타티는 내가 패배감을 느끼기를 원하지 않는다. <플레이타임>은 그런 강박관념으로부터 관객을 해방시키기를 원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관객이 영화에서 본 만큼 각자가 그에 반응해서 이야기를 만들면 된다. 다음에 다시 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 것이다. 그런 면에서 <플레이타임>은 일정 부분 인터랙티브 시네마를 실현한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식의 관람이 가능한 것은 이 영화에 통상적으로 말하는 이야기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굳이 이 영화의 내용에 대해 요약해보자면 한 무리의 미국인 관광객들이 프랑스 공항에 도착해서 시내를 관광하고 다시 공항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이다. 그 속에 자크 타티가 직접 연기하고 있는 윌로 씨가 회사의 한 직원과 계속 만나지 못 하고 헤매는 에피소드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영화는 무수히 많은 에피소드의 나열로 이루어져 있고 각 에피소드마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해서 그 인물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시청각적인 유머가 펼쳐진다. 중심 플롯 자체가 부재하며 따라서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는다. 그나마 윌로 씨가 두드러진 캐릭터이기는 하지만 윌로 씨도 수많은 인물들 중의 한 명일 뿐 결코 이야기를 주도하지 않는다. 많은 에피소드가 교차하는 가운데 각 에피소드의 인물들이 서로 우연히 마주쳤다가 헤어지곤 하며 우연한 만남을 통해 새로운 에피소드가 펼쳐지기도 한다. 윌로 씨는 미국인 관광객 중의 한 명인 바바라와 우연히 여러번 마주치고 점점 좀 더 가까운 사이가 되어간다. 그러나 그 만남이 로맨스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만약 로맨스로 발전하게 되면 이 영화에서 윌로 씨와 바바라가 더 부각되고 그들의 에피소드가 중심 플롯으로 부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타티는 이 영화에서 그런 걸 허용하지 않는다. 모든 인물들은 각자의 개성으로 각 에피소드마다 본인의 역할을 하며 서로 어우러져 균형과 조화를 이룬다. 특별히 극을 주도하는 인물이 없기 때문에 화면 속에 보이는 모든 것이 중요해진다. 그러므로 관객은 화면 속에서 보고 싶은 것을 보면 되는 자유를 얻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를 두고 영화의 민주주의를 실현했다는 말도 나온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어느 것 하나도 그냥 지나가도록 놔두면 안 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기도 하다. 화면에서 보이는 것들을 놓치는만큼 관객이 타티가 완벽하게 설계해놓은 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재미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귀도 예민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 타티는 시각적인 요소만큼 청각적인 요소를 중시해서 개그를 설계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관객은 선택하면 된다. 그건 어디까지나 관객의 몫이다. 이 영화의 제목인 <플레이타임>처럼 관객은 이 영화를 가지고 놀고 싶은 만큼 놀면 된다. 더 잘 놀고 싶으면 화면 속에서 더 많은 것들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면 되고 적당히 놀고 싶으면 여유롭게 화면 속을 구경하면 된다.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맛있는 음식이 상 위에 잔뜩 올려져 있는데 서로 사이 좋게 앉아서 이것저것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이 핵심이다. 누구는 초코렛 케잌을 먹었는데 나는 그걸 못 먹었다고 해서 본인이 그 자리에서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 것은 아니다. 초코렛 케잌만큼 맛있는 또 다른 음식을 먹으면 되는 것이다. 윌로 씨와 한 회사의 직원은 서로 만나려고 하지만 계속 어긋나면서 숨바꼭질을 반복한다. 그들이 질서정연하게 구획된 방들로 구성된 거대한 건물 속에서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헤맬 때 그들은 마치 카프카적 미로 속의 세계에 있는 듯하다. 그 세계는 심지어 반사되는 투명한 유리들로 둘러싸여 있어서 실체와 허상의 경계조차 모호해진다. 그 결과로 유리가 있는 걸 눈치채지 못한 채 윌로 씨를 부르던 직원은 코를 다치기까지 한다. 그들은 저녁이 되어서 좀 더 인간적인 공간이라고 할 길거리에서 비로소 만나게 된다. 이 에피소드를 통해 타티는 고도로 산업화된 사회 속에서의 인간 소외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텐데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와 유사하게 유머와 풍자의 전략을 통해 메세지를 전달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의 후반부를 장식하는 로얄 가든 레스토랑 장면은 영화 사상 최고의 시퀀스 중의 하나라고 할 만하다. 타티는 그의 천재적인 능력을 이 시퀀스 하나에 모두 집중시킨 듯하다. 완벽하게 설계된 그 수많은 인물들의 동선 속에 등장하는 시각적인 개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장면들을 과연 인간이 만든 게 맞는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그야말로 미친 리듬감을 보여주는 이 시퀀스는 가히 리듬의 모든 것이라고 할 만한 감각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점입가경으로 내달리며 춤을 추는 손님들의 몸짓도 거의 기계적으로 만들던 속도감이 주춤하게 되고 기계화된 신체가 인간적인 온기를 되찾게 되는 계기는 공간의 변형으로부터 시작된다. 윌로 씨가 만취한 미국인이 따려고 시도하는 모조 과일 장식을 대신 떼어내는 순간 시종일관 고장으로 말썽을 일으키고 있던 이 공간의 일부가 무너져내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됨으로써 빠른 속도로 음악을 연주하던 밴드의 공연이 멈추게 되고 칸막이로 인해 새로 생성된 공간에서 새로운 에피소드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이 순간은 마치 이 영화 자체를 은유하는 것 같기도 한데 감독이 완벽하게 설계한 거대한 무질서의 세계에서 나름의 논리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야 하는 관객이 처한 상황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상황에서 갑자기 바바라가 피아노를 치고 레스토랑의 손님 중의 한 명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이 순간은 실로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이 순간이 오기 전까지 바바라가 이 영화 속에서 피아노를 칠 것이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캐릭터의 의외성도 딱히 주인공이 없는 이 영화의 민주적인 특성에 의해 가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 아름다운 방점을 찍는 것도 바바라의 몫이다. 윌로 씨가 그녀에게 준 작은 꽃다발이 그래픽적 유사성으로 아름답게 확장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나는 <플레이타임>을 하나의 건축이며, 음악이며, 시이며, 회화라고 말하고 싶다. 이 영화에 대한 찬사를 나름 늘어놓다가 보니 사설이 길었지만 사실 이 영화에는 이런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화면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눈과 소리에 민감한 귀와 여유로운 마음만 있으면 된다. 이 글을 읽으시고 마음이 동하신 분들이라면 주저하지 마시고 자크 타티가 영화 사상 가장 진귀한 진수성찬을 차렸다고 해도 무방할 이 완벽한 놀이의 세계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놀라운 체험을 하시기를 바란다. (2017년 2월 3일 재관람, 2023년 3월 4일 재관람)
Jay Oh
5.0
레트로 모던 전시회 안에서 길을 잃었다가 나온 느낌. 정교한 의식의 흐름, 정돈된 개판, 상상력 파노라마. A chaotic panorama of inventive artistry.
김혜리 평론가 봇
5.0
건축적 영화의 압도하는 매혹
STONE
4.5
도로 위에서 사 먹는 초코 아이스크림의 여유와 숨 막히는 인파 사이로 전해지는 꽃 한 다발의 감동. 문명은 모형 오렌지 하나 뽑았다고 무너져 내릴 만큼 부질없으면서, 무례한 미국인의 말 몇 마디에 새로 구축될 정도로 즉흥적인 것이다.
Cinephile
4.5
회색 육면체들의 지루한 공간에서도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내는 주인공과 함께, 카메라가 틈새의 유쾌함을 담아내는 시선이 사뭇 따뜻하다. 그 따뜻한 유쾌함이야말로 점차 하나의 기계적 양식으로 굳어져 가는 세상살이에서 가장 탐나는 마음가짐이 된다.
JE
4.5
미끄러지는 소통, 빈번한 단절, 반복적인 오인, 쏟아지고 휩쓸리는 군중 속에서 얼굴을 잃는 몰개성한 개인들. 모든 게 반듯하고 정연해서 숨막히고 건조한 무채색의 도시에 말 없는 산책자가 내던져진다. 말 그대로 길을 잃고 헤메는 여정인데다, 세상과 모든 공간, 그 안의 사물-물질, 혹은 시청각적인 감각을 낯설고 곤혹스럽게 뒤틀어버리는 체험. 윌로 씨가 미로 같은 사각 공간 안에 저마다 갇혀 있는 회사 안 풍경을 마주하는 장면에서 압도하는 기하적인 아름다움과 역설적인 공포 같은 것. 또, 그리스 조각상 쓰레기통이나 윌로 씨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해 마구 화내던 사장이 "무소음 문"을 세게 닫을 때 (여타 가득 메운 소음과 대비되게) 한없이 조용하던 대목들이 인상적이었다. 회화적이면서 정교한 카메라와 피곤할 정도로 일반적인 정보량을 초과하던 사운드 디자인이 웃음을 만들어내는 한편 신경증적인 고통이나 씁쓸함도 동반해버리는 게 참 묘했다. 그럼에도, 마치 도시 속에 숨어 있던 이상한 나라 같은 "로열 가든"에 이르면 모든 게 헝클어진다. 반듯하게 깔아둔 대리석 하나가 대뜸 말썽을 부리며, 시퀀스의 도입부에서부터 그토록 정연하던 세계에 균열을 새기는가 하면, 인물 간의 어긋남, 인물과 사물, 인물과 공간 간의 부정교합이 점차 매혹적인 불협화음을 이뤄간다. 영화 전반부를 괴롭히던 단절과 오인은 과장된 해프닝과 엉뚱한 웃음으로 범람하고, 급기야 포드의 어떤 영화들처럼 둘러싼 모든 게 부서지고 부서트려지는 난장으로 치닫는다. 무엇보다 윌로 씨를 번번이 가로막으며 단절과 오인을 불러 일으키던 유리(문)는 산산이 부서지며 웃음을 극대화하는 순간이 되기까지. 그야말로 앞서 축조해온, 건조하고 질식적인 (공간이자 건축물인) 질서를 해체하며 엉망진창이 되어가는 소동극. 이토록 맥락 없이 무질서한 시퀀스를 보고 있자면, (포드의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기묘하지만 매혹적인 별세계가 되는 듯싶다. 그렇게 난장의 밤이 지나고 나면, 세상은 거의 놀이공원으로 변모해있다. 여전히 소란하지만 경쾌한, 형형색색의 활력이 감도는 도시. 쌓아 올려놓곤 다시 해체한, 건조한 질서와 활력적인 무질서를 거쳐 탄생시킨 새로운 세상. 이런 것도 일종의 변증법적인 풍경이라 할 수 있을까. 인물과 공간과 사물과 사운드가 함께 치받고 또 공명하는, 어쩌면 포드적으로도 느껴지는, 화합의 시네마 같다. 차갑게 줄지은 가로등마저 작고 귀여운 꽃에 빗대어 버리는 재치야말로 거대하게 압도하던 도시의 질식성을 단숨에 무너트리는 소소한 낭만이자 사소하지만 따스한 화합의 징표 아닐까.
Dh
3.5
파리의 지붕 밑 열린 공간, 어리둥절하면서도 아이러니한 만찬 #Royal #서울아트시네마 × 자크 타티 회고전
별,
5.0
'자크 타티'의 야심이 시청각적 감각과 무수히 파생되는 서사로 꽉 차 있는, 전위적이고 혁신적인 불운의 걸작이다. 아마 지금 시대의 그였다면 여기에 4D라는 이름으로 후각과 촉각에 미각까지도 가득 채우지 않았을까. - 65mm 필름의 그 넓고도 촘촘한 공간을 꽉 채우는 시각적 요소를 하나 빠짐없이 볼 수 있게 만드는 딥 포커스 촬영과 공간적 질료성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카메라의 위치에 따른 또렷한 청각적 요소들의 병치와 분단은 관객의 적극적인 (영화적) 수용을 능동적으로 이끌어내는 시대를 앞서간 놀라움으로 여겨진다. 이를 통해 관객은 윌로와 바바라를 느슨하게 쫓아가는 서사 속에서 각자만의 시선으로 각자만의 이야기 - 등장 인물 하나하나가 모두 지속적으로 개입한다. 모든 인물의 주인공화! - 를 만들어내게 되는데, 이것은 지금의 인터랙티브 게임과 거의 유사하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다. (실제로 너무 놀란 마음에 연이어서 두 번을 봤는데, 시선을 두는 것에 따라 전혀 달라지는 영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 현대 도시 문화 속에서 획일화되고 삭막하여 소외되는 인간 군상(전반부)이 어떻게 그 속에서 매몰되지 않고 인간적인 본성을 되찾을지에 대한, 일종의 따스한 연대(후반부)를 보여주는 <플레이타임>은 시청각적인 요소와 영화적 기법의 혁신 속에서도 결국은 물질에 매몰되지 않는 인간미를 찬양하는, 시대를 너무도 앞서간 걸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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