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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한

루한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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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책 ・ 2015

평균 4.1

"물론 우리 앞에 남는 것은 무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이처럼 무로 융해되는 것에 저항하는 우리의 본성이야말로 우리 자신이자 우리의 세계인, 바로 삶에의 의지일 뿐이다. 우리가 너무나 무를 싫어하는 것은, 우리가 삶을 너무나 의욕하고, 우리는 이러한 의지에 불과하며, 바로 그 의지 말고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 자신의 궁핍과 속박으로부터 눈을 돌려, 의지가 완전한 자기인식에 도달하고, 모든 것 속에서 자신을 재발견한 다음 자기 자신을 거리낌 없이 부정하며, 그런 다음 의지의 마지막 흔적이 그들의 신체와 더불어 소멸하는 것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세계를 극복한 사람들을 바라보면, 우리에게 드러나는 것은 쉼 없는 소동과 야단법석 대신에, 소망에서 두려움으로, 기쁨에서 고통으로의 끊임없는 이행 대신에, 의욕하는 사람의 삶의 꿈을 이루는 결코 충족되지 않고 결코 소멸하지 않는 희망 대신에, 모든 이성보다 높은 평화, 대양처럼 완전히 고요한 마음, 깊은 평정, 흔들림 없는 확신과 명랑함이다. 라파엘이나 코르지오가 그린 얼굴에 이것이 그냥 반영된 것도 완전하고도 확실한 복음인 것이다. 즉 인식만 남아 있고 의지는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다음 우리는 깊고 고통스런 동경심을 가지고 이러한 상태를 바라보는데, 그러면 이와 더불어 우리 자신의 참담하고 구원할 수 없는 상태가 이와 대조되어 환히 나타난다. 그럼에도 우리가 한편으로 치유할 수 없는 고통과 끝없는 비참을 의지의 현상인 세계의 본질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다른 한편으로 의지가 없어지는 것에서 세계가 녹아 없어지는 것을 보고, 눈앞에 단지 공허한 무만을 간직한다면, 이러한 고찰은 우리를 영속적으로 위로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식으로, 물론 자신의 경험 속에서 성자들을 직접 만나기란 흔한 일이 아니지만, 그들에 대해 기록한 이야기, 내적인 진리를 확실하게 보증해주는 예술이 우리 눈앞에 보여주는 성자들의 삶과 행적을 고찰함으로써, 인도인들처럼 신화나 무의미한 말을 통해, 브라마로 들어가거나, 또는 불교도들이 열반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무 자체를 회피하는 대신에, 우리는 모든 덕과 성스러움의 배후에서 궁극적인 목표로 떠돌고 있는 어두운 인상, 아이들이 어두움을 무서워하듯이 우리도 무서워하는 무의 어두운 인상을 쫓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오히려, 의지가 완전히 없어진 후에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아직 의지로 충만한 모든 사람들에게는 물론 무라는 사실을 거리낌 없이 고백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의지가 방향을 돌려 스스로를 부정한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그렇게도 실재하는 것으로 보는 이러한 세계가 모든 태양이나 은하수와 더불어 - 무인 것이다. " "의지가 인간으로서의 의지로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경우 의지에 근거가 없다는 것은 실제로도 인식되었으며, 그리고 이러한 의지는 자유롭고 독립적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그러는 즉시 의지 자체의 무근거성으로 인해, 의지의 현상을 도처에서 지배하고 있는 필연성도 간과되었고, 모든 개별적인 행위는 동기가 성격에 미치는 영향으로 말미암아 엄밀 한 필연성을 지니고 일어나는 것이므로, 자유롭지 않은 행위가 자유롭 다고 이야기되었다. 이미 말했듯이, 모든 필연성은 근거에 대한 결과의 관계이지,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근거율은 모든 현상의 보편적인 형식이며, 인간은 행동을 할 때 다른 모든 현상과 마찬가지로 근거울에 귀결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의지는 자기의식 속에서 직접 그 자체로 인 식되므로, 이러한 의식 속에는 자유의 의식도 들어 있다. 그런데 개체, 즉 개인은 물자체로서의 의지가 아니라, 이미 의지의 현상이며, 그러한 현상으로서 이미 제약받고 있어, 현상의 형식, 즉 근거율을 따른다는 것이 간과되고 있다. 그 때문에 각자는 선천적으로, 또한 자신의 개별 적인 행동에서도 자신을 전적으로 자유롭다고 간주하고, 자신은 매순 간 다른 생활태도를 시작할 수 있다고, 즉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놀라운 사실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는 후천적으로, 즉 경험을 통해서, 자신은 자유로운 게 아니라 필연성에 귀결되어 있으며, 아무리 결심하고 성찰해도 자신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없고,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자신이 싫어하는 같은 성격을 그대로 가져서, 말하자면 끝까지 자 신이 맡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자못 놀라워한다. 이러한 고찰은 윤리적인 것이라서 이 책의 다른 곳에서 하는 게 마땅하므로, 나는 여기서 이 고찰을 계속 할 수 없다. 여기서는 나는 다만, 그 자체 로 근거가 없는 의지의 현상이 그러한 현상으로서는 필연성의 법칙, 즉 근거율에 귀결되어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는 우리가 그 현상들 속 에서 의지가 나타나는 것을 인식함에 있어서, 자연의 여러 현상이 일어 나는 필연성에 대해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