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와 니체에 큰 영향을 끼친 쇼펜하우어의 대표작
부록 「칸트 철학 비판」 국내 최초 수록
이보게, ‘글을 잘 쓴다’고 해서 정말이지 쇼펜하우어 철학 체계에 대한 비판의 글을 쓰는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아. 게다가 이미 이야기된 엄청난 양의 쓰레기 더미를 내던지는 나의 능력을 자네가 믿는다면, 내가 이 ‘일급의 천재’에게 품고 있는 존경심을 자네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을 거야. - 프리드리히 니체
부록 「칸트 철학 비판」을 국내 최초로 수록한 개정증보판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단초 마련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프랑크푸르트의 현자 쇼펜하우어의 대표작으로, 그는 이 책에서 당시 지배적이었던 이성주의 철학에 반기를 들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주장한다. 이성을 통해 파악되는 세계는 표상의 세계일 뿐이므로 세계의 본래적인 특성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세계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의지를 통해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제1판 머리말에서 자신의 철학사상의 원천을 플라톤, 칸트, 우파니샤드라고 밝혔다. 특히 “이마누엘 칸트를 공부하지 않은 인간은 눈 뜬 장님”이라고 말할 정도로 칸트 철학을 높이 평가했으며, 칸트 철학으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았다. 그는 이 책의 끝 부분에 칸트 철학에 대한 상세한 해설과 설명을 담은 「칸트 철학 비판」을 부록으로 실고, 머리말에 “내 저서는 칸트 철학을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므로 이 부록도 알고 있음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이런 점에서 볼 때 부록을 먼저 읽는 게 좋을 듯싶다. 부록의 내용은 이 저서의 제1권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더욱 그러하다”라고 밝히며 본문을 읽기 전에 「칸트 철학 비판」을 먼저 읽을 것을 당부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국내에 출판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는 「칸트 철학 비판」이 실려 있지 않아 이를 아쉬워하는 독자들이 많았다.
이번 개정증보판에는 상당한 분량의 부록 「칸트 철학 비판」이 새롭게 첨가되어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단초가 마련되었다. 또한 많은 철학·심리학 용어를 새로 바꾸고 통일하였으며, 문장을 가다듬어 가독성을 높였다. 그리고 본 저서의 장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내용에 부합되게 간략한 제목을 달았다.
의지가 없으면 표상도 세계도 없다
의지의 세계는 살아 있는 자연의 세계다
쇼펜하우어는 헤겔로 대표되는 이성 철학을 거부하고 세계를 이성이 아니라 의지에 의해 파악한다. 그에 따르면 이성은 두뇌 현상일 뿐이고, 의지의 제약을 받으며, 의지의 부산물에 불과하다. 따라서 세계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성이 아니라 의지를 통해 다가가야 한다. 쇼펜하우어가 주된 관심을 가지는 의지의 세계는 살아 있는 자연의 세계다. 생물이 태어나고 자라며 번식하는 생명 현상의 본질을 그는 의지로 파악한다. 우리는 이러한 자연의 의지를 우리 자신의 자연인 몸을 통해 직접 경험한다. 우리가 몸 안에서 느끼는 온갖 충동과 본능, 욕망, 정동 및 성 욕동 등은 바로 몸이라는 인간적 자연의 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인간 생명의 본질을 이루는 적나라한 요소들이다. 따라서 삶에 대한 의지란 성을 매개로 특정한 개체 속에 자신을 객관화하고자 하는 개체화의 의지다.
이처럼 신체와 성에 주목하고 있는 쇼펜하우어의 의지 철학은 당대 생물학 연구의 성과를 철학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형이상학은 당대의 자연과학적 발전에 대한 철학적 응답이었고, 자연과학 및 실증주의 시대의 형이상학이었다. 그리고 그의 의지 철학은 서구 철학의 역사에서 그동안 주목을 받지 못했던 신체와 성이 본격적인 철학적 담론의 주제로 떠오르게 되는 계기를 제공하게 되며, 이후 니체와 삶 철학을 거쳐 하이데거, 가다머로 이어지는 반합리주의 노선의 출발점이 된다. 또한 쇼펜하우어의 의지 개념은 현대의 문화적·예술적 담론에서 주요 범주로 다루어지는 욕망의 범주에도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무의식 세계인 의지의 세계가 의식 세계인 표상의 세계를 지배한다는 쇼펜하우어의 의지 철학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을 철학적으로 선취하고 있는 셈이다.
독일의 근대 철학자 중에서 사후에 쇼펜하우어만큼 광범위한 독자층과 명성을 얻은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사상은 니체를 거쳐 생기론, 생철학, 실존철학, 인간학 등에 영향을 끼쳤고, 현대 심리학과 프로이트, 융 및 그 학파와도 연결된다. 스위스 문화사학자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의 역사철학 또한 쇼펜하우어에서 비롯된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키르케고르, 바그너, 톨스토이, 베케트, 아인슈타인, 하우프트만, 토마스 만, 카프카, 헤세 등 많은 사람들의 숭배를 받았다. 쇼펜하우어가 이렇게 여러 분야에 영향을 주었던 까닭은 무엇보다 그가 사람이 놓여 있는 상황을 깊이 들여다보는 보기 드문 통찰력과 문필가로서의 뛰어난 재능을 겸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의식적 정신 과정을 가정한 사실이 학문과 삶에 커다란 파장을 가져올 것임을 분명히 의식한 사람은 극소수였다. 그런데 덧붙여 말하자면 정신분석이 맨 먼저 이런 일을 한 것이 아니었다. 몇몇 유명한 철학자, 무엇보다도 위대한 사상가 쇼펜하우어를 그 선구자로 들 수 있다. 그의 무의식적인 ‘의지’는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정신적 충동과 같은 말이다. 그것 말고도 그 사상가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과소평가되는 성적 본능 의미를 거듭 강조하여 상기시켜 주었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매 문장마다 거부, 부정, 체념 등을 외치고 있었다. 나는 이 책에서 세계, 삶, 고유한 정서를 볼 수 있는 거울을 만났다. 정말 대단한 만남이었다. 나는 아무런 경향성도 없는 예술의 꽃을 보았고, 질병과 치료, 추방과 도피처, 지옥과 천국을 보았다. 자기 인식에 대한 욕구가 밀려들었다. - 프리드리히 니체
나는 쇼펜하우어가 인간들 중 가장 천재적인 인물이라 생각하네.
- 레프 톨스토이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칸트의 중국식 수수께끼, 헤겔의 장황스러움, 스피노자의 기하학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놀란다. 모든 것이 명쾌하고 문장이 논리정연하며, ‘의지, 투쟁, 고뇌로서의 세계’라는 중심개념이 훌륭하게 집중되어 있고 꾸밈없이 솔직하다.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솔직한 것이다.
- 윌 듀런트
* 이 책은 고전의 현대적 접근을 표방하여 기획된 《을유세계사상고전》시리즈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