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한국에서는 <멘탈>만이 개봉했지만, 계속 ‘관찰영화’(observational film)를 표방한 다큐를 발표하는 소다 카즈히로의 신작입니다. 한국에서는 작년 전주에서 상영되었고, 이번에 10회를 맞이한 대구사회복지영화제가 감독 특별전으로 상영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나마 <선거> 연작 정도가 미개봉 작품 중에서 유명하지만, <굴 공장>이나 <연극> 연작, <평화> 같은 작품들도 충분히 좋은 작품입니다. 동시에 매 작품마다 다루는 소재나 방식은 다르지만, ‘관찰영화’라 자기 자신이 선언한 것처럼 일종의 ‘다이렉트 시네마’와 같은 스타일의 발전-재계승과 같은 느낌으로 대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프레드릭 와이즈먼을 자신이 가장 영향받은 감독이라고도 이야기하죠.) 자막이나 내레이션을 최대한 배제한채, 현장에서 비춰지는 대상의 움직임을 기록하고 카메라의 줌인-줌아웃, 때로는 롱테이크를 적절히 사용해 충실하게 행적을 담아내어 대상이 지니고 있는 속성과 관계를 탐사합니다. 동시에 그 대상은 단순한 ‘개별 존재’에 그치지 않고, 개인-개인, 개인-집단/사회, 집단-집단 등 끊임없이 상호 교류하는 ‘관계성’을 지닌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항구 마을>은 어떤 대상을 다루고 있을까요. 바로 일본 오카야마현 세토우치시의 항구 마을 ‘우시마도’입니다.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정보를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마무라 쇼헤이가 <간장 선생>을 비롯한 여러 작품을 촬영한 공간입니다. 홍보 책자에선 ‘일본의 에게해’라더군요. 일본에서 꽤나 번성했던 항구 마을이지만 대다수 일본의 시골 지역이 그렇듯 우시마도 역시 관광객을 제외하면 고령화된지 오래입니다. 청년은 거의 보이지 않고, 아무리 나이가 어린 사람도 중장년의 연령대입니다. 노인들만 남은 마을에서도 계속 삶을 위한 행동이 연속되지만 이미 행위자 전반이 노인이 된 상황에서 행동들의 양상은 결코 이전과 동일할 수 없습니다. <항구 마을>은 늙은 마을의 사회상을 ‘행위’의 순환을 통해 드러내려 시도합니다. 물고기를 잡고, 잡은 수산물을 경매장에서 판매하고, 다시 그렇게 팔린 생선들이 도소매상에서 손질되고, 그렇게 팔릴 준비를 마친 물고기가 어떻게 각 가정에 도착하는지, 그리고 각각의 과정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행위자들이 다시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긴 호흡으로 응시하고 접근합니다. 단순하게만 보면 이 과정은 전형적인 ‘상품의 유통 단계’이지만, 감독은 이 과정들을 롱테이크를 통해 제시하며 단순히 이 모습들이 ‘자본과 상품의 유통’을 넘어, ‘노동’의 순간이며 동시에 점차 쇠락하고 늙어가는 마을 구성원의 ‘삶’의 단계임을 은연 중으로 전달합니다. 마치 <멘탈>에서 외래 정신병동을 등장하는 다양한 군상들의 관계로써, <선거> 연작에서 한 신인 정치인이 선거에 출마하며 경험하는 관계의 양상에 초점을 맞췄듯- 이전에도 같은 우시마도를 다룬 작품 <굴 공장>과 더불어 일상적인 행동과 노동의 행위 속에서 형성되는 관계를 조망하며 의미의 조직과 구성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작품은 직접적으로 일본 사회 전반을 말하거나, 매우 직설적으로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소다 카즈히로가 영향을 받은 감독 프레드릭 와이즈먼이 그렇듯, 관찰과 응시를 통해 이들이 어떤 시스템과 사회에 속하여 영향을 받는지를 치밀하게 이야기합니다. 몸을 움직이기도 쉽지 않지만 혼자서 고기를 잡으러 나서는 어부 노인, 거대한 경매장의 크기에 비하여 많이 소박해진 경매장의 모습, 더 이상 마을 내부의 소비만으로는 충족시키기 어려워진 수산물 도소매점의 풍경, 그리고 점차 ‘혼자’가 되는 마을 공동체 개인의 모습들은 각각의 시퀀스 자체만으로는 일상의 단면이지만, 이 단면들이 관계를 지으며 이어지는 순간 여러 층위의 ‘의미’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 의미는 한편으로 우시마도 마을만의 것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개인화되고 생기를 잃어가는 일본 고령화의 현상으로, 더 깊게는 이들을 감싸는 일본 사회 전반의 노동과 복지, 그리고 여전히 삶과 심리의 측면으로 압박하는 분위기를 짚고 있는 것입니다. 오가와 신스케나 하라 카즈오, 와카마츠 코지로 대표되는 일본 액티비즘-리얼리즘 다큐와는 결이 같지 않지만, 서구의 다이렉트 시네마의 전통을 가져오면서도 일본 사회 특유의 ‘공동체성’과 ‘관계성’에 주목하며 변형한 소다 카즈히로의 ‘관찰 영화’는 진중한 흐름 안에서 강렬한 메시지를 지닙니다. 이렇게 꾸준한 페이스로 발표되는 그의 작품 기획이 함의하는 지점들은, 어떤 차원에서는 액티비즘 다큐가 주는 한국과도 닿는 지점이 많습니다. 장윤미의 <공사의 희로애락>, 문창현의 <기프실>, 왕민철의 <동물, 원> 등이 기존 한국 독립 다큐의 전통을 이어나가며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려 하지만 대상의 다양한 층위를 조망하며 의미를 조직하는 다큐멘터리가 점차 주는 가운데, 소다 카즈히로의 작품은 작품 내적 상황은 물론 외적으로도 한국에 여러 숙제를 던지는 것입니다.
좋아요 4댓글 1


    • 데이터 출처
    • 서비스 이용약관
    • 개인정보 처리방침
    • 회사 안내
    • © 2024 by WATCHA, 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