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맹

아우스터리츠
평균 4.2
"제발트의 기억 방식은 기술적 정보처리 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오늘날의 기억술에 완강히 저항한다. 그의 기억은 오히려 구전과 구술에 근거한 구어적 기억, 공간 이미지와 공간의 궤적을 통한 수사학적 기억, 답사와 탐사, 문헌을 통한 고고학적 기억에 근거하고 있다. (...) 반은 허구이며, 반은 진실이고, 보고에 대한 보고이며, 역사적 기록들이며 문학적 사생아이다. 그러나 이는 그의 글쓰기가 허구적 차원의 이야기를 형상화하기보다는 기억 작업을 통해 역사적 실체에 도달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소설이자, 연구서이자, 에세이이자, 사진집이자, 기록서같은 제발트의 소설. 공간을 잃어버리고 떠돌아다녀야하는, 자오선을 고향으로 삼는 이민자들의 경우, 기억은 단순히 시간 순서가 아니다. 공간의 사소함을 하나하나 훑기 위해 떠나고 책으로 뒤져 찾아가면서 기억을 되찾아가는 방식으로의 기억. 액체 근대 이후의 유랑해야만 하는 사람들 공간과 지리가 가지게 된 비장소, 비역사성 위에서 저항하고 기억하는 방식. 사실 읽었을 때는 이민자들보다 불친절함과 과한 세부사항들 이어지지 않는 줄거리때문에 그냥 끄덕이면서 보았는데, 연출적 문체적 해설을 듣고 나서는 역시 제발트라고 끄덕였다. 이민자들과 다르게 너무 큰 공간에 대한 디테일은 또 한 편으로는 독자에게 뻗어나가지 않을 수도 있다라고 느꼈다. 그나마 아우슈비츠에 관한 디테일이라 서구 비평가들에게 익숙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위대한 소설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배움이 모자란 나의 탓. 한 편으로 요샌 레네처럼 끊임없는 현재일 뿐인 포스트모더니즘에서의 잃어버린 시간성에서 나온 기억에 대한 화두에 골몰해 있다. 너무 많은 이미지들이 주는 망각. 아니 이미지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지의 배열의 문제라면? 애프터썬과 애프터양의 기억 문제처럼. 객체에게 이미지를 맡기고 주체와의 기억을 조합해 새로운 기억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기억? 혹은 제발트처럼 공간적 전회(+ 몸 담론)와 그 기억들에 대한 관심으로 또한 바뀌고 있는데 어떻게 보편적으로 뻗어나갈 수 있게 그려내거나 연출할 수 있을까. 결국 기록의 정합성보다 제발트의 이민자들처럼 이미지와 이야기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