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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크족의 북소리
평균 3.4
원주민을 꽤 편협하게 활용한다. 다만 원주민 자체를 적으로 간주하는 것 같진 않다. 예컨대 블루백은 길버트의 친구로 등장하며, 블루백을 처음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라나의 모습은 거의 편집증적으로 그려진다. 심지어 "우리 편 인디언도 있다", "우리는 인디언들과 사이가 좋다"는 대사들도 등장한다. 영화에서 적은 차라리 영국군이자 전쟁 그 자체처럼 보인다. 원주민은 그들 혹은 그것의 수단인 셈인데, <모호크족의 북소리>의 편협함은 원주민을 악의적으로 묘사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치적인 적이라던지 나쁜 의미에서라도 어떤 주체성을 부여하는 대신 그저 무관심하게 도구적인 활용에 머물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영화의 관심은 외부의 적보다는 (포드의 영화가 으레 그렇듯) 내부, 공동체의 결속 따위에 맞춰져 있어 보인다. "땅을 개간할 때는 이웃이 도와주는 게 풍습"이라는 시퀀스 사이의 갑작스러운 자막처럼, 공동체적인 가치를 강조하는 영화는 애당초 공동체의 출발이라 할 만한 결혼식으로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분량을 마을의 활력, 공동체적인 협업 내지 일상에 할애한다. <모호크족의 북소리>가 추구하는 건 그런 공동체의 풍경이고, 전쟁은 다름 아닌 공동체를 위협하는 사태인 셈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건, 공동체를 위협하는 전쟁이 오히려 결속을 이끌어준다는 점이다. 이러한 양가적인 시선은 영화 속 두 전투를 묘사하는 방식에서 나타난다. 우선은 마을의 남자를 모두 징병하며 떠나는 첫 전쟁. 이때 영화는 그들과 함께 전쟁터로 향하는 대신에 줄곧 마을에만 카메라를 둔다. 마치 외부와의 전투, 단순히 전쟁의 스펙터클이 목적이 아님을 단언하는 것만 같다. 전쟁은 화면을 떠나서 이루어질 뿐이고, 마을에 남은 이들의 끝없는 기다림, 걱정, 심리적인 피로, 인내 등을 비춘다. 그러다 이윽고 전쟁이 끝나 귀환하는 병사들의 모습을 담아내는데, 전쟁의 승패도 묻지 않은 채 비의에 빠진 처참한 표정과 분위기에 집중한다. 지금에야 오히려 노골적인 면은 있으나, 아무튼 전쟁의 참상을 진술하는 길버트는 그러한 분위기를 더욱 증폭시킨다. 이때 전쟁은 공동체를 파멸적 공포에 빠트리는 사태다. 그런데 후반부의 전투는 양상이 사뭇 다르다. 갑자기 집 안으로 들이닥친 원주민들처럼, 마을에까지 밀려 온 전쟁에 마을 사람들은 힘을 합쳐 싸운다. 이 순간, 여성이라고 하여 전쟁에서 배제되지도 않고 함께 맞서 싸운다. 전투의 과정 자체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포탄을 나르고, 누군가는 불을 붙이고, 누군가는 문을 연다. 대규모 전투가 주는 스펙터클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보다는 전투 안에 담긴 마을 사람들의 연대를 더 비추는 것이다. 마침내 열세 개의 별이 새겨진 성조기를 자랑하는 엔딩처럼 이 순간 전쟁은 마치 공동체적인 연대와 결속을 더욱 두텁게 하는 과정처럼 보인다. 공동체의 가치를 더없이 예찬하는 <모호크족의 북소리>는 전쟁이라는 공포를 직시하면서도 그걸 마치 성장통처럼도 다룬다. <역마차>, <젊은 링컨>과 같이 같은 해애 만들어진 포드의 영화에 비하면 아쉬움이 남긴 하나, 그래도 연출은 여전히 빛나는 부분들이 많다. 색이 더해진 풍경은 매혹적으로 그려지고, 화면의 심도마저 풍부하게 활용된다. 특히 영화 후반부 아군에게 지원 요청하러 떠나는 길버트를 찍어내는 씬은 풍경과 심도가 결합하며 그야말로 인상적으로 자리한다. 또 그렇게 길버트가 돌아와 전쟁이 마무리되어 라나를 찾을 때, 전쟁에 지친 이들을 훑는 롱테이크와 점차 커지는 (길버트의) 아기의 울음소리를 절묘하게 연결한 순간도 참 감각적이다. 다만 아쉬운 건 여 주인공의 존재감이 아닐까 싶은데, 헨리 폰다와의 케미도 조금 그렇지만 꽤 주요한 비중을 차지함에도 무미한 면이 있다. <리오 그란데>나 <말 없는 사나이>의 모린 오하라 같은 경우를 생각하면 더욱 아쉬움이 남는데, 차라리 맥클레너 부인이 보여준 활력이야말로 (심지어 헨리 폰다보다도) 압도적이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