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는 만큼 행복하다

안티프래질
평균 4.1
지금 세상에는 큰 블랙스완이 덮쳤다.정규분포에서 분산값이 매우 큰,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블랙스완이 나타난 것이다.imf는 우리의 산업과 노동 생태계를 송두리째 바꾸었고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인들의 집에 대한 의식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더욱이 2008년의 블랙스완은 대중에게 있어 전문가에 대한 회의감을 심화시켰다.전문가,그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들은 '복잡계'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을까? 안티프레질의 저자인 나심 탈레브는 말한다."전혀 아니라고" 자전거 타기를 예로 들어보자.누군가 자전거를 타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다.그는 자전가 페달의 원리를 공부하고 있다.또한 오르막과 내리막,자갈밭 등 다양한 환경에 대한 대처법에 대한 지식을 쌓고 있다.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갑자기 우박이 떨어지는게 아닌가? 이 상황은 너무 극악의 확률이여서 따로 배운 적이 없었다.그는 곧장 넘어지게 되었다.그리고 곧장 '자전거 타기 법(개정판)' 이라는 이름으로 우박 떨어지는 환경이 추가되었다. . 참으로 웃기지 않은가.근데 이게 현 경제학자,교수들이 하는 짓이다.그들은 실무 경험은 전무한 채 온갖 이론만 배운다.그리고 예상치 못한 블랙스완이 등장하면 기존 이론에 추가하는 식으로 대응한다.세상은 복잡계이다.저자는 이런 학습 방법은 fragile한 교육방식이라 비판한다.이전 자전거 예시로 돌아가면,다들 알다시피 자전거를 제일 빨리 배우는 건 타다 넘어지며 배우는 것이다.그렇게 배웠다면 우박이 오는 환경은 물론 진흙 바닥이여도 금방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다.이렇게 넘어지면서 배우는 지식,즉 경험적 지식은 '참지식'이며 'antifragile'한 교육 방식이다.저자는 이 점을 강조한다. . 이제 현재 코로나19 상황을 보자.그 누가 코로나19를 예상했겠는가.이건 명백한 블랙스완이다.정말 극악의 확률로 발생한,전혀 예상치 못한 동시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블랙스완 말이다.우리 모두 처음 겪는 일인데 이전 교과서에 적혀 있을 리 만무하다.근데 그런 지식만 가지고 있는 경제학자가 진정 도움이 될까? 아니,지금 필요한건 실무 경험이 없는 경제학자가 아닌 경영자이다.복잡계에서 살아남은 그들이 이 위기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2021.5.2 추가 나를 괴롭히던 사람들에게 감사함. 나에게 다정하고 잘해주던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는게 일반적이다.그들이 나를 도와주고 나의 인생에 도움이 됐기에 그럴 것이다.근데 정말일까? 나에게 다정한 그 사람들이 진정 도움이 되는 사람일까? 아니다, 그들은 나를 fragile 하게 만들었다.그들에게 의존하면 할 수록 더욱 취약해진다.그들이 어느순간 사라진다면 나는 무너지게 된다. 오히려 정말 고마운 사람들은 채찍질을 해준 사람들이다.그들은 나에게 문제 해결 능력을 요구했으며 독립심을 강요했다.그로인해 나는 그들뿐 아니라 그 누구의 도움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강인함'을 얻었다.그들이 나에게 했던 짓은 지극히 'antifragile'한 것이였다.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은 fragile한 사랑이다.그 사람이 사라지는 순간, 나는 무너진다. 오히려 어느 순간에도 헤어질 수 있는 상태여야만, 그 사람과 유지하기 위해 나를 성장시킬 것이다.그렇게 되면 어느 순간은 그 사람에게 얽매일 필요가 없어진다.즉 독립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후자는 나에게 'antifragile' 함을 요구했다. 그 누가 나에게 모질게 굴고 충고하고 채찍질하는 사람을 좋아할까? 나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허나 자연은 나의 '감정'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 분이다.자연은 나에게 불확실한 현실을 받아 들이기를 원하며, 스트레스성 성장을 요구하고 나의 안티프래질을 바라신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정반대를 원한다.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프레질한 상태를 기대한다.나의 문제에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따뜻한 말로 위로해주는 사람을 원한다.스트레스는 전혀 받지 않는 환경에서 일하기를 원한다.인플레이션만큼만 상승하는 안정적인 직업(허나 상승은 제한적이고 언제든 해고로 0이 될 리스크를 지닌)을 원한다. 내가 어떻든 간에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본인은 물론 상대방 역시 fragile한 상태에 노출되어 있다)을 원한다. 나 역시 fragile함을 원했다.인간의 어리석음에는 끝이 없다.나에 대한 천한 본성을 들여다보면 자연에 대한 환멸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