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동구리

동구리

1 year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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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

영화 ・ 2024

평균 2.8

손구용 감독의 전작들과 유사하게 문학에서 출발한, 혹은 문학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원에서>는 오규원의 시 "뜰의 호흡"의 구절들을 영화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인용한다. 정독도서관 정원의 풍경들이 등장한다. 이야기는 없다. 영화는 공원에서의 시간을 다시 나누고 배열하여 리듬을 만든다. 시가 운율을 형성하고 적당한 간격들로 단어들을 배치하는 것처럼, <공원에서>는 공원의 이미지들로 그렇게 한다. 물론 그렇다고 이 영화가 오규원의 시를 원작으로 삼았다고는 할 수 없다. 손구용의 전작들, <서울의 겨울>이나 <밤 산책>이 김승옥의 소설 "서울, 1964년 겨울"이나 고전 한시를 인용하지만 원작으로는 삼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대신 손구용은 "뜰의 호흡"이 그려내는 심상, 인간이 본 사물들의 모습을 그대로 포착해 기술하기보단 마치 후기인상주의나 큐비즘이 행했던 다시점의 감각, 혹은 인간과 비인간 사물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의 포착에 가깝다. 수평을 잡는 대신 기울어진 앵글은 그러한 시각을 대변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두 인물, 김서휘와 남경우가 각각 연기한 여자와 남자는 비둘기, 고양이, 개미 등 카메라에 담긴 다른 생명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지위로 존재한다. 연기라기보단 퍼포먼스에 가깝게 다가오는 영화 속 모습에서 그들은 그저 서있거나 앉아 책을 읽고 있을 뿐이다. 직전작 <밤 산책>이 완전한 무성영화였던 것과 반대로, <공원에서>는 사운드가 강하게 개입된다. 숏의 이미지와 사운드가 곧장 연결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컷이 바뀐 이후에도 매미소리, 새소리, 물소리, 행상의 스피커 등이 이어진다. 이번 영화의 사운드는 적극적으로 영화의 이미지에 개입한다. 특정한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는 이 영화의 반복되는 구조, 작은 시간을 86분의 러닝타임으로 확장하며 발생한 다시점의 구조를 반영한다. 영화는 시간을 어떻게 상대하고 이미지를 어떻게 배열할 수 있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대답이 하나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