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에서
공원에서
2024 · 다큐멘터리 · 한국
1시간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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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두 시경 공원에서 한 여자가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한편, 새 한 마리가 나무에 앉고, 구름은 해를 가리고, 고양이는 세수하고, 물레방아는 돌고, 비둘기들은 보도에 앉아 쉬고, 남자는 뜰의 구석에서 서성이고, 나비는 꽃에서 꽃으로 날고, 분수는 솟구치고, 잉어 몇 마리 연못 속에서 헤엄치고, 개미들은 제 할 일에 바쁘다. [서울독립영화제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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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과전갈
4.0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이미지와, 그 사이에 불쑥 침투하는 차이. 구조를 통해 형성되는 독특한 리듬. 시간이 정갈하게 분절된다. 공간이 우아하게 춤을 춘다. 수렴되거나 발산되지도 않는다. 감독은 섬세하고, 난잡하지 않게 나열하며 운율을 형성한다. 단지 시구를 삽입한다고 해서 '시적'이라는 유치한 표현을 쓰진 않을 것이다. <공원에서>는 시구 텍스트도 하나의 이미지로 사용한다. 영화는 최소한의 이미지와 사운드로만 가동한다. 삼각대 위의 카메라는 어떻게 움직임을 갈망하는가. 느리지만 강하게. 그림자가 드리우며, 물레방아가 돌고. 이런 영화를 목격할 때면 행복해진다.
mekong1922
4.0
걷는다. 공원에서. 오후 두 시. 나비가 날아오른다. 텅 빈 70평의 우주가 잠시 생성된다. 24개의 행은 어느 순간 뒤죽박죽 배열이 되고, 셔츠를 벗고 돌에 앉아보거나 해를 쳐다보기도 한다. 여자는 책을 펴고, 다시 닫는다. 분수는 햇빛의 순환처럼 부서질 듯 소리 지르다가 다시 멈춘다. 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소리가 종소리, 군고구마 아저씨, 자연의 울음소리로 치환된다. 움직임과 멈춤. 간단하고 우리에겐 관념적으로 자세한 호흡들이 재배열되고, 해체된다. 10분의 리얼타임을 90분으로 해체하고, 다시 재배열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텅 빈 우주는 어디 있는가? 멀리 있는가? 당신은 지금 어디를 밟고, 어떤 호흡을 - 어디서 하고 있는가? 오후 2시에 밤산책은 불가능한 것인가. 손구용은 궁금해한다. 그래서 걷는다. 꼿꼿이 서 있는 고개의 관절을 꺾은 채로 말이다. 손구용의 삐딱한 산책을 응원한다. 계속 그렇게 걸어주길 바란다.
샌드
3.0
공원 곳곳의 모습과 그 속에서 시를 읽는 사람, 그리고 시 자체를 한데 모아 담아낸 이 작품은 별다른 내용이 있진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 애틋하게 들어가 있는 작은 서정성이 느껴집니다. 이렇게 한 공간의 모습을 담아낸 다큐멘터리를 생각해 본다면 공간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방법도 있겠습니다만, 이 작품은 그보다는 있는 것을 어떻게 달리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태도가 제겐 더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살짝 삐딱하게 어긋나 있는 카메라 앵글과, 일반적인 영화에 비하면 한참 적은 편이긴 하지만 이런 비슷한 류의 영화를 떠올릴 때 상대적으로 많이 들어간 컷 편집, 인물의 모습과 문학 작품까지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순수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보이는 것보단 어디서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를 선택하는 과정의 연속으로 영화를 구성한 점이 독특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영화 중에서 가장 연출자의 개입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데, 다 보고 나면 그 모든 지점이 한 장소와 그 장소를 구성하는 것과 그 장소에 있는 것들이 만드는 묘한 서정을 향해 있다는 점에서 마음이 가는 지점도 있습니다. 다만 어쩌면 실험 영화라고 말할 수도 있을 법한 이런 영화들이 종종 놓치는 지점 중 하나인, 화면의 때깔이나 인물을 등장시키고 사용하는 방식 등에서 상당히 어색하게 느껴지는 기본기의 부족이 이 영화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지점은 아쉬운 면입니다. 특히 이 영화처럼 장소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 연출이 가미된 접근 방식을 가진 작품임을 생각해 본다면, 그 어색함이 인위적이거나 인공적으로 보이면서 영화 전반에 깔린 감상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어떤 흥미로운 작법과 접근법을 가진 영화라 할지라도 기본기가 부실하다면 결국 그 방식에 지지할 수 없고 오직 의문만 남긴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였습니다.
동구리
4.0
손구용 감독의 전작들과 유사하게 문학에서 출발한, 혹은 문학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원에서>는 오규원의 시 "뜰의 호흡"의 구절들을 영화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인용한다. 정독도서관 정원의 풍경들이 등장한다. 이야기는 없다. 영화는 공원에서의 시간을 다시 나누고 배열하여 리듬을 만든다. 시가 운율을 형성하고 적당한 간격들로 단어들을 배치하는 것처럼, <공원에서>는 공원의 이미지들로 그렇게 한다. 물론 그렇다고 이 영화가 오규원의 시를 원작으로 삼았다고는 할 수 없다. 손구용의 전작들, <서울의 겨울>이나 <밤 산책>이 김승옥의 소설 "서울, 1964년 겨울"이나 고전 한시를 인용하지만 원작으로는 삼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대신 손구용은 "뜰의 호흡"이 그려내는 심상, 인간이 본 사물들의 모습을 그대로 포착해 기술하기보단 마치 후기인상주의나 큐비즘이 행했던 다시점의 감각, 혹은 인간과 비인간 사물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의 포착에 가깝다. 수평을 잡는 대신 기울어진 앵글은 그러한 시각을 대변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두 인물, 김서휘와 남경우가 각각 연기한 여자와 남자는 비둘기, 고양이, 개미 등 카메라에 담긴 다른 생명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지위로 존재한다. 연기라기보단 퍼포먼스에 가깝게 다가오는 영화 속 모습에서 그들은 그저 서있거나 앉아 책을 읽고 있을 뿐이다. 직전작 <밤 산책>이 완전한 무성영화였던 것과 반대로, <공원에서>는 사운드가 강하게 개입된다. 숏의 이미지와 사운드가 곧장 연결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컷이 바뀐 이후에도 매미소리, 새소리, 물소리, 행상의 스피커 등이 이어진다. 이번 영화의 사운드는 적극적으로 영화의 이미지에 개입한다. 특정한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는 이 영화의 반복되는 구조, 작은 시간을 86분의 러닝타임으로 확장하며 발생한 다시점의 구조를 반영한다. 영화는 시간을 어떻게 상대하고 이미지를 어떻게 배열할 수 있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대답이 하나 도착했다.
보리수
1.0
제임스 베닝 되기가 이리 어렵다. 영속회귀와 변주의 이미지-사운드 루프로 초월적 현상학의 체험을 노렸겠으나...게으른 교활함과 음침함만이 엄습한다. 갤러리와 극장 사이에서 어슬렁거리는 수많은 베닝-워너비들은 왜 민망한 미학적 제스쳐만 집착하고 솔직함을 화면 안으로 끌고 오지 않는 것일까?
지하실
5.0
지하실 (jihasil.com) | OTT | 2025년 12월 18일 - 2026년 2월 18일 서울의 한 공원, 여자와 개미와 새와 나무와 햇빛이 잠시 그곳에 머무른다. 무심히 지나치곤 했던 만물의 체류 시간이 화면을 촘촘하게 메꾼다. 손구용 감독은 공원을 일상의 중간 지대로 설정하여, 사적인 감정과 사회적 역할이 잠시 느슨해지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고정된 거리감의 숏과 절제된 리듬은 사물들을 판단하지 않은 채 관찰하게 만들며, 오규원 시인의 언어를 빌려 그 사이에 빈틈을 주어 시상이 깃들도록 한다. 영화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지금 이곳의 풍경을 조용히 기록한다. • 정독도서관 공원에서 제임스 베닝을 만나면 꼭 이런 느낌이려나. 그에게서 받았던 작은 휴식의 즐거움을 내게 친숙한 환경에서도 느끼는 게 가능하구나, 하는 기쁨으로 <공원에서>를 처음 접했다. 영화 쇼트들과 오규원 시인의 시구들의 배치를 통해 손구용 감독이 전하고 싶었던 암호 메시지가 있었다면, 안타깝게도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서울독립영화제 소개 글에서 적었듯 '만물 사이에 위계가 사라지는' 순간이 본 영화가 목표한 바라면, <공원에서>는 분명 귀중한 선물 같은 작품이다. 조금 다른 얘기를 하자면, 나는 동시대 한국 영화들이 서울의 아름다움을 더 담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서울 토박이로서 내가 이 도시에 갖는 애정이 제대로 보존된 영화가 없다는 생각이 가끔씩 들기 때문이다. 제임스 조이스가 더블린이 폭격당해도 벽돌 하나하나까지 『율리시스 (1922)』를 보고 복원할 수 있다는 얘기를 했듯이, 예술 작품의 사료적 가치는 중요하다. <공원에서>는 나에게 그런 사례 중 하나로 다가온다.
재혁짱
0.5
영화가 끝나기도 전에 내 줄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태준
3.5
시간의 예술을 도구 삼아 오락의 공간을 사색의 공간으로 criticism- 변주는 변죽이 되었다. 베닝과는 다르다. 베닝보다 훨씬 구성적이며 가상적이다. 다만 베닝만큼 담대하지는 못하다. (의도와는 관계 없이) 어찌보면 소박하고 소소하고 아기자기하다. 다만 유약하다. p.s. 고양이 겁나 이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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