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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

지하실

3 months ago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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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

영화 ・ 2024

평균 2.8

지하실 (jihasil.com) | OTT | 2025년 12월 18일 - 2026년 2월 18일 서울의 한 공원, 여자와 개미와 새와 나무와 햇빛이 잠시 그곳에 머무른다. 무심히 지나치곤 했던 만물의 체류 시간이 화면을 촘촘하게 메꾼다. 손구용 감독은 공원을 일상의 중간 지대로 설정하여, 사적인 감정과 사회적 역할이 잠시 느슨해지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고정된 거리감의 숏과 절제된 리듬은 사물들을 판단하지 않은 채 관찰하게 만들며, 오규원 시인의 언어를 빌려 그 사이에 빈틈을 주어 시상이 깃들도록 한다. 영화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지금 이곳의 풍경을 조용히 기록한다. • 정독도서관 공원에서 제임스 베닝을 만나면 꼭 이런 느낌이려나. 그에게서 받았던 작은 휴식의 즐거움을 내게 친숙한 환경에서도 느끼는 게 가능하구나, 하는 기쁨으로 <공원에서>를 처음 접했다. 영화 쇼트들과 오규원 시인의 시구들의 배치를 통해 손구용 감독이 전하고 싶었던 암호 메시지가 있었다면, 안타깝게도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서울독립영화제 소개 글에서 적었듯 '만물 사이에 위계가 사라지는' 순간이 본 영화가 목표한 바라면, <공원에서>는 분명 귀중한 선물 같은 작품이다. 조금 다른 얘기를 하자면, 나는 동시대 한국 영화들이 서울의 아름다움을 더 담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서울 토박이로서 내가 이 도시에 갖는 애정이 제대로 보존된 영화가 없다는 생각이 가끔씩 들기 때문이다. 제임스 조이스가 더블린이 폭격당해도 벽돌 하나하나까지 『율리시스 (1922)』를 보고 복원할 수 있다는 얘기를 했듯이, 예술 작품의 사료적 가치는 중요하다. <공원에서>는 나에게 그런 사례 중 하나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