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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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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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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책 ・ 2012

평균 3.8

“너랑 있으면 한없이 우울해질 수 있어 좋아” 몇 년 전 친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기분이 좋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얼떨떨하던 찰나 친구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내 친구가 하는 말이 너는 왜 이렇게 부정적이냐고 그러더라고. 그냥 좋은 게 좋은거지. 왜 이리 만사를 복잡하게 생각하냐고.” 친구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기회의 땅 미국에서 살고 있었다. 나와 함께 한없이 우울해질 수 있다는 것은 지금 돌아보니 나의 부정성을 뜻했다. 나는 좋은 게 좋은거란 말이 참 싫다. “너는 너무 생각이 많아 그냥 받아들여.” 라는 말이 매우 폭력적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다. 불편한 진실에 눈을 감고 세상을 아름답고 긍정적으로만 보라고 강요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비약적인 표현일지 몰라도 ‘변태스럽다’ 라는 생각이 든다. 뭐든 해낼 수 있고 모든 것을 좋게만 생각하는 긍정주의자들한텐 무언가를 ‘깊게 생각하고’ ‘비판하는’사람은 그저 세상에 불만이 많은 투덜이일 뿐이다. 나는 ‘이성으로 비관하고, 의지로 낙관하라’는 그람시의 말을 좋아한다. 현실을 직시해서 문제를 비판하되 미래에 대해서는 희망적 태도로 살아가고 싶다. 긍정만능주의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진 나였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자기착취의 덫에 걸려 허우적됐다.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인생에서 여러가지 경험을 해야 된다는 생각, 성취욕이 주는 기쁨은 버킷리스트를 꽉꽉 채우게 만들었다. 마라톤, 크로스핏, 서핑, 클라이밍, 폴댄스, 독서모임, 해부학스터디 등등 내가 이루어낸 성취들을 sns에 전시하면서도 자유롭긴 커녕 더 해내야 한다는 강박감이 옥죄었어왔다. 급기야는 책의 본문처럼 나의 sns친구들은 내 자아전시의 소비자가 됐다. 다행히도 자아에 질식하기 전에 연말 쯤 한 권의 책을 만났다. ‘에고라는 적’ 은 지난 시즌 임팩트 클럽장이 추천한 책이다. 나르시시즘에 도취되어있던 나를 구원해줬다. 내가 대단한 존재일 필요도 없으며, 나는 그냥 지구의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일 뿐이다라는 생각이 들자 더 훌륭한 존재가 되겠다는 생각을 멈췄다. 하지만 지금도 완전히 나아진 것은 아니다. 나르시시즘에 덫에 빠지는 것을 막고자 sns를 멈췄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득이 되기도 하지만, sns는 나에겐 해가 된 것 같았다. 경험을 추억하고 즐기기보다는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것을 전시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목적이 전도되어 버렸다. 마치 성취하는 나를 보여주기 위해 항상 열심히 바쁘게 활동을 했다. Sns를 끊으니 한결 나아지긴 했어도 두려운 마음이 든다. 마음이 나약해질 때마다 긍정무한주의자, 성취적인 인간이라는 감투를 쓰고 싶기 때문이다. 늘 자기를 착취하지 않기 위해 주의해야겠다. 우리는 너무나 자기착취가 쉬운 환경 속에 살고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마음이 불안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