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별,

별,

8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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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시간

영화 ・ 2003

평균 3.5

2018년 03월 30일에 봄

느닷없이 가해지는 폭력의 상황을 불친절하게 보여주는 것이 '미카엘 하네케'의 특징이지만, <늑대의 시간>은 거기서 더 나아가 아예 인과의 과정을 외면해버린다. 이쯤 되면 남는 것은 상황의 결과와 그 결과를 이끌어내는 캐릭터들의 반응 뿐인데, 뜻밖에도 감독의 전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극히 차가운 현실에서 일말의 동정의 여지도 없는 캐릭터들 속에 인간성을 보존하는 인물들의 등장은 무척이나 낯설다. - 생존만이 유일한 미덕인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상황 속에서도 남을 돕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은 그래서 더 아이러니한데, 결국 자기 희생으로 구원을 이끌어내겠다는 소년의 모습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는 성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내려야 되는 비 - 물 - 만이 인류의 구원을 향한 길임을 생각해볼 때 자기 희생으로의 불의 이미지는 헛된 몸부림에 불과하다. 이만하면 됐다는, 할만큼 했으니 그만하라는 소년을 붙잡는 남자의 말은 차라리 헛된 구원의 희생을 생각하는 우리들에게 쓰라린 좌절을 준다. - 약간 낮은 시점에서 - 마치 좌석에 앉은 소년의 시선으로 - 달리는 기차의 창과 밖을 응시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과연 그렇게도 기다리던 구원을 향한 기차는 당도하였는가. 그렇게 어디론가 간다면 그 목적지는 어디인가. 감독은 우리에게 그 어떤 답도 주지 않으나, 그 답을 향한 침묵이야말로 감독이 우리가 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일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듯 하다. 희망을 말하는 듯한 <늑대의 시간>은 결국 우리가 지금의 세계에 대해 이해할 수도 없고, 그 무엇도 할 수 없음을 무기력하게 보여주는 극단적인 허무의 메세지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