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여기 이상한 재판이 있습니다. 반국가 조직을 만들어 ‘국가반역’을 꾀했다는 꽤나 막중한 죄로 기소되었는데, 피고인들은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고 모두들 유죄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검사 신문으로 가는 순간 어딘가 이상해집니다. 조직적으로 움직였다고 하기엔 피고인들의 진술이 서로 엇갈리고, 분명 유죄임을 인정했던 피고인과 검사 간의 말다툼도 생깁니다. 허나 모두들 자신은 국가에 대한 죄인이며, 분명 자기는 유죄라 끝까지 강변합니다. 대체 무슨 재판이기에 이런 괴이한 흐름이 벌어지는 걸까요. 1930년, 공학교수와 기술자들이 ‘산업당’이라는 조직을 결성해 부르주아와 협력하여 반혁명과 국가 전복을 꾀했다며 재판을 받았습니다. 나중에야 드러난 사실이었지만 애초에 ‘산업당’은 존재하지 않았죠. 모든 증거가 조작이었습니다. 동시에 스탈린 시기 대숙청의 전조를 알리는 사건이자, 10월 혁명과 적백내전 이후에도 소련 사회 내부에 간극이 존재함을 드러내는 단서였습니다. 세르게이 로즈니차는 재판이 벌어지던 당시를 기록한 필름을 러시아 연방의 다큐멘터리 아카이브에서 발견하고, 이 푸티지를 활용하여 <재판>을 만들었습니다. 영화는 사실상 1930년의 아카이브 필름을 최대한 그대로 활용합니다. 연출 의도에 맞게 시퀀스를 편집하고, 자막과 음악을 삽입한 것 정도가 편집의 전부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당시의 재판 기록을 충실하게 보여주는 선택이 1930년, 소련이 놓였던 어떤 단면을 여지없이 보여줍니다. 반역자를 처벌하기 위한 명목으로 개최된 재판은 정작 ‘반역 행위’를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대신 기소된 이들이 놓인 지위나 행동, 그리고 레닌 말기 시행된 ‘신경제정책’(NEP)에 대한 입장이 관념적으로 어떠한 문제가 있었는지에 관심을 기울일 따름입니다. 시종일관 자신을 유죄라 자백하던 교수와 기술자들은 정작 그간의 행보에 대한 신문 진술에 꽤나 민감히 반응합니다. 재판의 맥락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최소한 이 재판의 핵심이 ‘반역 행위’가 아니라 일종의 ‘권력 투쟁’이자 경제 정책에 대한 정치 관료와 기술자-교수 사이의 갈등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 재판 과정을 최대한 보여주는 선택을 통해 자연스레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식적’으로는 분명 ‘반혁명분자’를 처벌하는 순간이지만, 감독은 아카이브가 지니고 있는 미시적-거시적인 의미를 포탁하며 1920-30년대 소련이 놓인 갈등의 지점을 바라봅니다. 동시에 ‘재판’이라는 행위가 과연 ‘중립적’인 가치에 입각하여 판결을 내리는 것인지를 묻습니다. 근래 KBS에서 방송되었던 <88/18>이 아카이브에 적극적으로 연출자가 개입하며 의미를 새로이 재해석했다면, <재판>은 김경만의 <미국의 바람과 불>처럼 각각의 푸티지가 놓안 정치-사회적인 메세지에 집중하여 의미를 분석하고 있는 것니 흥미로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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