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철
4.5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 읽기
책 ・ 2021
평균 3.4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는 야만이다."-아도르노 전후 지식인들은 혼란에 빠졌다. 과학기술과 문화융성으로 일컬어지는 벨 에포크 시대의 뒤를 이어 파시즘과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역사상 어느 전쟁에서도 일어나지 않았던 인종청소가 과학기술을 빌려 자행되었다. 인류는 스스로의 타락을 목도했다. 문명 발달의 기반이 된 서구의 계몽, 합리성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계몽의 변증법은, 계몽을 통해 야만에서 벗어난 인류가 어떻게 '새로운 상태의 야만'에 빠지게 되었는가를 해부하는 책이다. 하버마스는 이 책을 두고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책'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막스 베버는 계몽을 탈주술화라고 정의했다. 중세의 세계관은 자연을 신성시하고 질적인 변화를 믿는 세계관이다. 그런 세계관에서 양적 변화만 남은 세계관, 자연을 이성을 통해 계산하고 예측할 수 있는 세계관으로 바뀐 것이 탈주술화다. 계몽주의는 자연과학의 발달, 이성, 역사의 진보를 신뢰한다. 더하여 칸트는 사회윤리까지 이성으로 달성가능하다고 보았다. 이성을 통한 계몽으로 선이 실현되는 지상낙원을 만들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세계대전과 파시즘을 목도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신화에서 벗어나게 한 계몽이 새로운 신화로 이끌었다고 말한다. "왜 인류는 새로운 형태의 야만에 빠지게 되었는가?" 야만은 계몽 이전의 인류다. 인류는 자연에 종속된, 동물적인 동일한 삶을 산다. 원시제전은 자연을 달래려는, 자연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최초의 시도다. 샤먼들은 미메시스, 자연을 모방하여 그들의 힘을 대신 행사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외적 자연지배와 동시에 내적 자연지배, 자기 보존을 위한 자기 포기가 같이 나타나게 된다. 또한 샤먼의 명령을 받아 제전을 행하는 이들에게서 노동의 도구화 또한 나타나게 된다. 계몽의 원동력인 합리성에 이미 비합리성이 내재되어 있었다. 이 변증법적인 착종관계에서 비극이 심어진 것이다. 막스 베버는 목적을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고, 결국 수단이 목적을 압도하는 합리성을 합목적적 합리성이라고 불렀다. 이 개념은 비판 이론가들에게 도구적 이성이라는 개념으로 계승되었다. 도구적 이성은 대상을 지배하는 도구로 전락한 이성을 의미한다. 계몽의 시작부터 이 도구적 이성은 내재되어 있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써의 이성이 그 힘을 압도하여, 가치판단을 위한 이성 등을 억누르기 시작한 것이다. 나치에겐 하루에 5만명을 처리할 수 있는 수용소가 있었다고 아도르노는 말한다. 그들은 도구적 이성을 통해 효율적 살인방법을 고안해내면서, 살인이 옳은가에 대한 지는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없었다. 영화 <대부>의 마피아 조직은 비토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만들었지만, 마이클은 자신의 조직을 위해 가족을 죽이게 된다. 도구에 불과한 조직이 목적인 가족을 누른 것이다. 도구적 이성의 폐해로 자연은 경제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고, 개별적인 인간들은 사라지고 개념만이 남아 인간 소외 현상이 벌어졌고, 자기보존을 위해 자기 포기를 강요당하는 주체들은 산업사회 속에서 동일한 삶의 반복을 강요당하고 있다. 파시즘, 문화대혁명, 북한에서 볼 수 있는 전체주의적 행동양식은, 자본권력이 효율성을 명목으로 모든 분야를 지배한 현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아도르노는 대중문화를 동일한 삶의 반복 재생산으로 보고 경멸했다. 인간의 존재방식을 표현하는 문화마저 자본권력이 침투한 것을 보고 비판한 것이다. 이 문제상황을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계몽에 대한 계몽', '이성의 자기자각'이라는 표현으로 극복하려고 한다. 이 문제를 자각할 수 있었던 것도 이성의 역할 덕분이기 때문에, 이성을 버리지 않고 이성의 올바른 사용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그들이 '비판' 이론으로 불리는 이유가 이 지점이고, 포스트모던과 결정적 차이점 또한 이 지점이다. 사실 계몽의 변증법은 60년대까지 해석되지 않았을 정도로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성좌적 배열, 방대한 인식, 논리의 거부로 쉬운 이해를 지양하는 글쓰기 방식이 저자의 의도이기는 하나, 독자 입장에서는 읽히지 않으니 힘들 따름이다. 아도르노의 권위자신 문병호 교수님의 이 명쾌한 해설서 덕분에 사상을 겉햝기로나마 알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